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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5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야...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그냥 내가 이 일의 일부가 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


네드가 경건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금요일, 바쁜 저녁 시간대를 보내고 난 뒤 조금의 여유가 생긴 참이었다. 아래 층에서 로린다가 뒤늦게 온 몇 명의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리필 요청을 상대하는 동안, 피터와 네드는 이름 모를 스타크 인더스트리 직원이 피터가 학교 끝나고 The Hybrid Puppy에 도착할 즈음 내려놓고 간, 난도질 당한 것 같은 커피 기계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 메모가 한 장 있었지!"


갑자기 상기해낸 피터가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냈다. 


피터는 스타크 씨가 직접 커피 기계를 가져다 놓고 가시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할지 실망해야 할지를 스스로도 몰랐다. 아니, 사실 알 것도 같다. 분명 안도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스타크 씨의 눈을 마주할 수도 없었을 것 같으니까. 망할 호르몬 같으니. 스타크 씨의 턱수염이 자신의 피부에 닿아 올 때 나는 느낌이 어떨까 하는 상상을 그만 둘 수가 없었던 하루였다.

사실 호르몬 따위보다 더 심한 건 꿈이다. 특히 그 꿈이 피터를 하루종일 괴롭혀서 스타크 씨가 자신의 셔츠 단추를 피터가 풀 수 있게 해주신다거나 최소한 조끼라도 벗겨드릴 수 있게 해주실까 궁금하게 만들 땐...


젠장, 이제 피터의 머릿속은 다시 조끼를 입은 스타크 씨로 가득 찼다.


"그의 유일한 조건은 자신과 커피 사이에 버튼 하나만을 남겨두는 것 뿐... 세상에, 이거 진짜 너무 멋지잖아!"


네드가 메모를 요약하며 하는 말을 듣고 나서도 피터가 자신의 정신머리를 다시 현재로 되돌리는 데에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래서, 도와줄거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피터도 자신의 말투가 너무 간절해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겠지만 네드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혼자 하겠는데, 내가 와이어 다루는 걸 너만큼 잘 하지도 않고 내가 코딩하면 아마 스타크 씨는 영영 사라지실 거 같아서..."

"야, 물어볼 필요도 없어. 오늘 다 뜯어본 다음에 내일 너 일 끝나면 11번째 거리에 있는 그 그 중고품 할인상점에 가서 타카기가 중고 머더보드* 있는 지 좀 알아보자."


그 날과 그 다음 날 그들은 그 말을 정확히 따랐다. 자정이 왔다 간 다음 날 저녁도 이상할 정도로 바쁜 탓에 일이 끝날 때쯤엔 피터는 평소보다도 더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도 이건 좋은 종류의 피로다. 피터가 아직 로봇 동아리 회원이었을 때 자주 느꼈던, 몸은 피로로 느려지지만 두뇌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벌써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는.

확실히 피터가 스타크 씨에게서 시험을 받는 것은— 피터가 보기엔 이건 일종의 시험임이 틀림 없었으니까, 아니면 대체 왜 천재 엔지니어가 자신의 기계를 청소년한테 고쳐달라고 부탁하겠어— 그에게 그 어떤 에너지 드링크보다도 더 자극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야하기도 하고. 


안 그래도 벽이 정말 얇고 메이의 불면증이 다시 도지고 있는 요즘, 피터가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이유였다.


어찌 됐든 간에, 네드는 이번 주 토요일, 즉 오늘 오후 9시 까지 귀가해야 했기 때문에 어두워진 뒤에 카페의 윗층에서 그저 싸구려 투광 조명등에 비춰서 커피 기계를 거의 완성해가는 것은 피터 혼자였다. 적어도 누군가가 1층의 유리창에 노크를 하기 전까지는.

윗층에 카운터의 줄이 얼마나 긴 지 확인할 수 있게끔 설치되어 있는 난간은 카페 정문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로 피터가 정문을 보니 남성이 틀림 없는 형체가 후드집업과 무릎에 구멍이 뚫린 청바지를 입고 서 있었다. 총이 없기는 한데... 애초에 노크하는 도둑이 있기는 한가?


갑자기 울린 핸드폰 벨 소리가 피터의 생각을 방해했다. 모르는 번혼데, 이건 무슨...


"여보세요?"

"들여보내줘, kid, 나 하루종일 회의만 해서 카페인이 좀 필요하거든."


피터가 흠칫 놀랐다. 누군지 알고 다시 보니 저 형체는 분명 스타크 씨가 맞다.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아셨지? 핸드폰 해킹하셨나? 근데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토니 스타크가 청바지도 있어? 후드집업도? 조끼를 입지 않은 모습은 어색한데. 


"그렇게 놀란 표정은 짓지 말고."


피터가 스타크 씨를 들여주고 문을 닫으니 한 말이었다. 피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뇨, 저, 그냥 예상을 못 했— 그, 어, 잘 어울리시네요 (it suits you)."

"Suit가 아닌 옷이 날 suit한다고 하다니, 꽤 매력적인데."


스타크 씨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윙크했다. 피터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감추려 황급히 카운터로 대피한다. 정확히 따지고 보면 그가 버진은 아니긴 한데, 리즈가 이사하기 전 한 번 한 키스나 작년 여름 제이슨과 했던 그... 무언가는 토니 스타크가 자신에게 플러팅하는 것— 무려 플러팅하는 것—에 대한 면역을 키워놓기는 부족했다. 


피터가 '져지 자바' 한 컵을 내려다 놓으니 스타크 씨는 그것을 생명수라도 된 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피터는 웃으며 보온병 하나를 가져왔다.


"아니면 카테터**로 영양 성분 좀 넣어드릴까요? 저 기본적인 응급처치 교육은 받았는데."


반쯤은 농담 삼아서 한 말이었는데 스타크 씨는 그걸 진지하게 고려하는 듯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아냐, 페퍼가 날 죽이려 들 걸. 상상해봐, 어떤 기사들이 나올지."


피터는 시도해 보지만 딱히 생각나는 기사 제목은 없다. 그때쯤 스타크 씨가 웃음을 터뜨려 피터는 스스로가 멍청이같다고 느꼈다.


"표정 엄청 볼 만 한데? 자, 이제 어서 내 기계로 네가 뭘 했는지 좀 보여줘 봐."


그래서 피터는 스타크 씨와 함께 윗 층으로 향한다. 스타크 씨는 피터가 난장판을 쳐 놓은 공간을 만족하는 듯 한 미소로 훑더니 이내 피터가 기계 수리를 끝낼 때까지 뒤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피터는 마치 기말고사를 칠 때 선생님이 바로 등 뒤에 서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여실히 받으면서도, 그런 것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그가 윤활유를 바를 때에는.


물론 이음매에— 기계의 이음매에 마찰이 덜 하도록 윤활유를 발라야 하는 건데, 언뜻 보기에도 스타크 씨도 피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스타크 씨는 피터처럼 그 생각을 할 때 얼굴을 붉히는 대신 더 진하게 미소 지을 뿐이고.

피터가 다 쓴 튜브를 자신이 앉아있는 바닥 옆에 내려놓을 때쯤, 그는 자신이 다시는 기계를 만들면서 방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 생생한 이미지들을 떠올리지 않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역시 고전적인 마찰학이 최고지."


스타크 씨가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단어 하나하나가 다 야하게 들리게끔 하며 말했다.


"마모와, 마찰과, 윤활."


피터는 긴장감에 입술을 핥으며, 스타크 씨가 그 동작을 자신의 눈으로 따라갔다고 확신했다. 비닐로 뒤덮인 바닥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웠어?"


그 질문은 분위기를 깸과 동시에 피터의 허를 정확히 찔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도 피터는 아직도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괴로움을 감출 수가 없다.


"저, 음, 대부분 독학인데요... 기초는 삼촌이 설명해 주셨어요. 전문가는 아니셨지만 집 안 기계들을 대충 고치실 정도는 됐거든요."


피터가 아까 손 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말라있는 이음매 하나에 윤활유를 바르려고 튜브를 들었다. 스타크 씨가 다시 농담을 던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잠잠하기만 했다. 한 박자 뒤에 피터는 다시 말을 잇는다.


"벤은 부품들을 다시 조립하는 법은 전혀 모르셨어요. 그건, 음, 뭐... 하지만 제가 기계를 분해하는 건 말리신 적도 없었고 그 뒤엔... 같이 고치기도 했어요."


갑자기 피터는 누군가 꽉 죄인 것처럼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뒤엔 네 가족 토스터도 업그레이드하고 그러셨다?"

"그런 셈이죠."


작게 웃으며 대답한 피터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물었다.


"스타크 씨도 그러셨어요?"


순간 스타크 씨의 눈은 피터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감 잡을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찬다. 피터는 황급히 덧붙였다.


"어, 그, 제가 물어봐도 괜찮으시다면요, sir."


스타크 씨가 그 호칭에 목을 움츠리려다 가볍게 고개를 저으신 것 같다고, 피터는 생각했다.


"그건 상관 없는데, 내 생명력을 채워줄 기계에 팔을 깊숙히 묻은 채로 날 'sir'이라고 부르는 건 굉장히 상관 있어."

"아, 죄송해요, 죄— 죄송해요. 그럼, 어...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 지..."


토니가 그를 평이하게 쳐다봤다.


"'토니'는 어때."


피터는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말은 없었다. 물리나 화학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으면서 지금 이 순간은 두뇌의 모든 부분이 일시정지한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의 뇌에 에러 코드가 있다면 지금 번쩍거리며 주의를 끌고 있겠지—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준다고? 그건, 그건 정말, 그건, 세상에, 그건—


"얼굴에 기름 묻었다, kid."


피터는 자신의 오른 뺨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숨은 짧은 간격으로 헉헉 튀어나오고 있었고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고 있었다. 젠장. 영웅으로 숭배하다시피 하는 사람 앞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것만큼 완벽한 하루가 없지.

하지만 피터의 상태를 보고서도 스타크 씨의 눈에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그 사실이 피터에겐 그의 캐주얼한 차림보다도 놀라웠다. 피터는 간신히 한 단어를 입 밖으로 냈다.


"기, 기름이요?"

"그래, 거기... 그리고 손에도."


스타크 씨가 스스로의 얼굴에 손짓하며 말했다. 피터는 튜브에서 나왔을 법한 기름 한 방울을 발견하고 닦아낸 뒤 바닥에 떨어진 튜브를 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원래 이것보단 더 깔끔한데—"

"하, 헛소리 하지마. 내가 작업실에서 일하는 걸 보면 알 걸, kid. 손톱 밑이 더러워지지 않으면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거야. 아니면 옷이라거나. 애초에 내가 그 세제 브랜드를 개발한 것도 내 아우디에 손 대다가 자꾸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들이 다 더러워져서라고."


와... 피터는 방금 자신의 최고의 판타지를 발견한 것 같다. 토니 스타크가 민소매 티셔츠와 얼룩진 청바지를 입은 채로 자신의 차 밑에서 미끄러져 나온 뒤 피터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아우디 밑에서 서로 팔이 스치며 함께 일하다가 차오르는 텐션에 그만—


안돼, 피터가 당장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이 순간이 매우 급작스럽게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피터가 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을 동안 헐거운 튜브를 아직도 들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튜브를 들고 있는 채로 손을 꼼지락거리느라 그 튜브를 꾹 눌러버려서— 쭈압 하는 소리와 함께— 튜브에서 기름이 비닐로 덮힌 바닥에 떨어지면서 꽤 질척한 소리를 낼 정도로 많은 양의 액체를 배출해 냈다는 것이었다. 몇 방울이 피터의 옷에 튀기는 했지만 제일 큰 얼룩은 토니 스타크의 후드집업의 소매에 묻었다.


피터는 경악에 차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피터가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스타크 씨는 자신의 소매에 묻은 윤활유를 한 손으로 닦아내고는 피터의 볼에 묻혔다. 피터는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반응했는데— 지금 이성은 '토니 스타크가 날 만졌어!'하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 했으므로— 하필 이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신에게 도전해 보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이 남자에게 윤활유를 더 뿌리는 것이었다. 큼지막한 방울 하나가 스타크 씨의 가슴에, 피터가 알기로는 아크 리액터로부터 몇 인치 위에 있는 곳에 떨어졌다. 스타크 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피터를 바라봤다.


"오, 후회할 텐데."


그렇게 중얼거린 스타크 씨는— 젠장,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피터가 더 빨랐다. 피터는 재빨리 계단으로 뛰어내려간 뒤, 그쯤에서 스타크 씨에게 거의 잡힐 뻔 했지만, 십 년간의 체조 경력을 이용해 카운터를 손쉽게 뛰어넘고 스타크 씨—아니, 토니—에게 약올리는 듯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멋진데."


토니가 수긍하며 한 말에 피터의 뱃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간 셈이지."


그리고는 그가 손을 드는데— 아, 맞다, 루브 건***. 왜 그걸 집어들 생각을 못 했지?

토니가 카운터를 한 손으로 짚고는... 그걸 뛰어넘었다. 섹시해서, 정말 너무 섹시해서, 루브 건에서 나온 첫번째 한 발이 피터의 턱에 맞을 때에서야 그는 도망쳐야 하는 것을 상기했다. 피터는 카페 뒤쪽에 있는, 영업 공간이 아닌 메이와 피터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뛰어간 뒤에, 아까 메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지만 이젠 비어져 있는 철제 테이블 위로 미끄러져 넘어가고는 허리를 숙이고 반대쪽 출입구로 기어갔다. 그동안 토니는 서랍 뒤쪽에 피터가 숨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피터는 다시 일어서서 카페를 들어서면서 어깨 너머로 뒤를 보며 토니가 따라오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다가— 피터가 이 출입구로 들어올 것을 예상한 듯한 토니와 부딪힌다. 

순간 피터는 놀라 숨을 들이키지만 그 외의 소리는 그가 토니 스타크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를 확인하고 나자 목구멍 속에서 죽어나갔다. 


토니는 눈꼬리가 주름 지도록 웃고 있었다. 자신의 한 손으로 피터가 아직도 쥐고 있는 튜브로 공격하지 못 하도록 그의 손목을 쥔 채로, 피터도 잡히지 않은 반대편 손으론 토니가 쥐고 있는 루브 건에서 뭔가 또 나오지 않도록 그것을 살짝 잡고 있을 동안.

피터는 토니의 미소의 미묘한 차이를 모두 알고 있는데— 확실히 하건데, 크리피하게 관찰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의 뇌 정도가 되면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만 노출되어도 그의 뇌는 분류를 하기 시작하는데, 몇 년동안 피터는 일종의 1부터 10까지의 기준을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이후의 기자회견에서의 경직된 미소로부터 2010 스타크 엑스포에서의 우쭐하게 번진 미소를 거쳐 포츠 씨와 호건 씨의 결혼식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부드럽고 비밀스럽게 머금어진 미소까지... 피터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본 적이 없는 미소다. 이 미소는 토니의 전신을 환하게 밝히고, 방 안의 느낌을 뒤바꾸고 피터로 하여금 숨도 못 쉬게 했다. 토니도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을 알아챘는지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피터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 온다. 피터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정말, 혹시 지금 당장...?


그 순간 열쇠가 문을 철컥, 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서로에게서 놀라 떨어졌다. 메이다. 그녀는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오고, 닫을 때까지도 시선을 내내 자물쇠에만 고정했다. 맞다, 이 짓을 하기 전에 아랫층에 불을 안 켰었지...


"안녕하세요, 메이!"


피터가 스스로도 좀 크다 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가 뒤돌아볼 동안 자신이 몇 걸음만 더 가면 천장의 희미한 조명을 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피터가 어물쩡거리며 그 곳으로 걸어가 불을 켰다. 불을 키고 보니 메이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화장도 공들여 했고 옷도 신경 써서 입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별로 화가 안 나 보이시는 건가. 피터가 어색하게 토니와 메이를 서로 소개하기 전에 토니가 선수를 쳤다.


"피터 누나신가 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메이는 놀란 듯 웃음을 터뜨리며 토니가 내민 손을 잡아 악수하면서도 피터를 향해 눈을 크게 떴다. 피터의 심장은 이 만남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는 불안함에 쿵, 쿵 하고 스타카토로 가슴 안쪽을 쳐댔다.


"감사합니다. 사실 숙모예요."


그렇게 말하고 피터의 쪽으로 돌아선 메이의 얼굴에서는 떠올라 있던 미소가 조금 희미해진다.


"왜 아직까지 여기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니? 그것도 온 몸이 기름 범벅인 채로?"

"다 제 탓입니다.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는지 보러 왔다가 그만."

"그리고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


피터가 항의하듯 한 말에 메이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토니는 헛기침을 하고 손목 시계를 몇 번 두드리고는 허공에 시계 모양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제 보니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피터는 부리나케 달려가 위층의 공구들을 치우고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잠갔다. 숙모가 토니랑만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도록—토니라니, 그렇게 불러도 된다니, 피터는 정말 믿을 수가— 두 배의 속도로 모든 것을 해치운 피터가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둘 앞에 나타났다. 메이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타크 씨가 감사하게도 태워주신다고 하네."

"와, 그거, 어, 감사합니다, sir, 저—"

"토니라니까, 피터. 천잰 줄 알았더니?"


토니가 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뭐."


카페 밖에는 검은색 아우디가 서 있었다. 운전석이 빈 채로.


"와 세상에, 저 이거 기사 읽었어요, 이게 그 시제품인가요? NHTSA에서 별 다섯 개 등급을 받았다는데 정말인가요? 새로운 AI의 일부가 들어가 있다던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메이가 피터를 차의 뒷문 쪽으로 밀며 긴장감 서린 웃음소리를 냈다.


"죄송합니다, 스타크 씨. 이래 봬도 제가 매너를 가르치긴 했어요."

"아니에요, 열렬해서 좋은데요."


토니가 그렇게 말하며 피터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게 느껴지자 피터의 목 끝에서부터 붉은색이 얼굴까지 번져왔다.피터는 그 뒤에 토니가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의 후드를 머리 위로 쓰는 바람에 한눈이 팔려서 하마터면 그의 다음 대사를 놓칠 뻔 했다.


"수리 끝나면 문자해. 여기 들려서 같이 타워에 들고 갈 테니까."


말을 끝맺고 뒤돌아 가는 토니의 뒷모습을 피터는 멍하니 쳐다봤다. 메이가 그런 그를 차의 뒷자석으로 밀어넣은 뒤 스스로도 올라탔다. 문이 찰칵, 하며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에서야 피터는 다시 멍한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 토니 번호 없는..."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피터의 핸드폰이 딩, 하고 짧게 울렸다.


From: TS

내 번호 있어.


도착한 문자를 보고 나오는 피터의 웃음소리는 거의 히스테릭하기까지 했다.


"괜찮니? 너무 할 일이 많은 건 아니지? 그게 조건이었잖니, 피터, 공부나 일에 지장을 안 준다는 전제 하에 허락해준 거야."


메이의 눈썹은 걱정으로 인해 잔뜩 찌푸려져 이마에 주름이 지어질 정도였다.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냥 좀..."

"정신을 못 차리겠어?"

"네..."


정적이 흘렀다. 피터는 엔진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지만 전기 모터의 희미한 소리만이 귀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피터는 퀸즈보로 다리를 자가용을 타고 건넌 적이 없었다. 적어도 밤에는.


"안 된다고 해도 괜찮은 거 알지?"

"네?"

"스타크 씨 말야. 너무 바쁘다고 해도 돼. 토니 스타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해서 네 인생의 다른 부분들을 모두 무시하면 안 되잖아, 피터. 그런 애가 되지 않도록 내가 잘 키운 것 같은데.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은 했어."

"그렇게 키우신 거 맞아요! 진짜 그러셨어요, 메이. 저 음... 안 된다고 하긴 했어요, 한 번. 처음 카페에 오셨을 때."


안 그래도 금전적으로 불안정한 집안 사정 때문에 그렇게 큰 팁을 거절했다고 하면 메이가 화라도 낼까봐 피터는 아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요즘은 메이의 반응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저번 주에는 이미 며칠 전에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어벤져스' 임무 때문에 피터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지 못 하자 기분 나빠하셨다. 메이의 반응은 피터가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변수였고, 피터는 이 변수가 제 스케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항상 감을 잡지 못 했다.

하지만 오늘, 피터의 이야기를 들은 메이의 눈은 눈물로 젖어들어가고 그녀의 팔은 피터를 가까이로 당긴다. 


"역시 우리 애구나."


메이가 중얼거린 말에 피터의 목이 다시 꽉 멘다. 


"벤이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피터도 메이의 몸에 팔을 둘렀다. 

차가 멈출 때까지 그들은 무인 자가용의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기대어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다.









*머더보드: 컴퓨터 시스템의 주요 구성 부품을 넣은 주 회로 기판.

**카테터: 체내에 삽입해서 각종 성분을 공급하거나 뽑아내는 도관.

***루브 건: 대충 이렇게 생긴 윤활유(=루브)를 말 그대로 총(=건)처럼 쏘듯이 뿜을 수 있는 기구.



- 중간에 007 찍은 토니피터 

-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토니피터 서사가 시작되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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