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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6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자비스?"


[ Yes, sir? ]


토니는 차의 GPS 시그널이 퀸즈의 한 주택 단지 밖에서 멈추는 것을 지켜봤다.


"이론적으로... 내가 열 여섯짜리랑 자면 얼마나 곤란해지지?"

[ 징역 4년입니다, sir. 물론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참담한 피해도 가게 될 것이고요. ]


방금 그 대답, 너무 빨리 나왔다. 토니는 쓰고 있던 안경을 내리고 제일 가까운 카메라에 대고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너 이거 미리 생각해봤나 본데?"

[ 바레인 프로토콜의 일부로 설정된 절차에 따르면 저는 sir의 상대를 향한 성적인 관심이 분명해지는 순간 그 상대와의 관계가 야기할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들을 계산하여야 합니다. ]


토니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건데, 나 그 바텐더랑 안 잤어! 그리고 걔 19살이었다고. 제정신이 박힌 나라였다면 아무도 신경 안 썼을 나이."

[ 바레인의 높은 성관계 동의 최소연령에 대해선 방문 이전에 이미 통지를 받으셨었습니다, sir. ]

"잔인한 농담인 줄만 알았지."


토니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바로 지금 이것처럼. 4년? 정말로?"

[ 조금 더 연령대가 비슷하셨다면 '로미오와 줄리엣 법'*의 일종이 적용됐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지금 내가 그 애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다고 돌려서 말하는 거지?"

[ 제 여론 추정에 따르면, 파커 씨와 sir이 연애에 기반한 관계를 맺는다면 많은 고객들이 이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라는 겁니다. ]

"워, 워, 연애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J? 그냥 방과후 특집같은... 아냐, 방금 그거 내가 들어도 크리피했어."

[ 그럼 그를 그만 좇으시는 겁니까? ]

"내가 퍽이나 그러겠다."

[ Sir, 저는 아무래도 이의를 제기해야— ]

"너무 앞서나가지마, 자비스, 그러다가 전자궤도 다 망가진다."


토니가 자비스의 말을 끊고 말했다. 자비스가 유난스러운 어미새처럼 구는 게 재밌긴 해도, 토니에게 자기 보존 능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금은 멈출 예정이니까. 언젠가는 그 애도 동의 연령에 닿을 거 아냐... 맞지?"


한 박자동안의 정적.


[ 뉴욕 주법(州法)에 따르면 파커 씨는 17세 생일에 동의 연령에 이르게 됩니다. ]


토니는 짜증 내듯 대꾸했다.


"알았어, 네가 달가워하지 않는 거 빌어먹을 정도로 잘 알겠다고. 이제 생년월일이나 말해."

[ 저는 그저 컴퓨터로서 의견을 가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습니다.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비스는 거의 콧방귀를 뀌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제 반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 단지 저는 제 예측에서 비롯한 염려들을 표현할 뿐이고, 이 경우에선 비록 파커 씨의 생일을 지나고 난 뒤에 법적인 영향을 제외하고서도 관계 사실이 알려지게 될 시에 손상을 입을 sir의 명성과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미래를— ]

"입 다물고. 피터 생일. 당장."


자비스는 심통 난 아이처럼 다시 한 박자동안 대답하지 않는다. 차라리 피터보다 이쪽이 더 청소년이라고 믿어질 정도였다.


[ 2001년 2월 19일입니다. ]


2001년.


젠장, 정말 어리긴 어리다. 동시에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한 데다가, 뛰어난 두뇌를 가졌고 토니와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해서 문제였다. 오늘 밤 그 뜨거웠던 전희를 생각하면 본인도 토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고. 

토니는 그 키스 직전까지 갔던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아랫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자비스, 샤워 틀어."


30분 후, 욕실 안에서 숨을 헐떡이며 파정한 토니에게는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진다. 내일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가지 않는 이상 자신이 피터에게 손을 대지 않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것. 이 관계의 문맥을 바꿔놓을 계획을 하나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 커피향 짙은 암시가 재앙을 불러올 것은 뻔했다. 물이 멎는 소리를 들으며 토니가 말했다.


"자비스, 그 카페의 재무 기록 열람 가능하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어차피 애초에 질문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




 

*





[ Sir, 브라이언 레미 씨와 야스민 맥케나 씨와의 회의 일정이 한 시간 후 8시 30분에 잡혀있습니다. ]


토니는 다가오는 회의보다는 어젯밤 작업실 소파에서 잠든 탓에 찌뿌둥한 몸에 더 짜증이 나 앓는 소리를 냈다. 자비스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또한 아침 식사가 하루 중에 제일 중요한 한 끼라는 것을 상기시켜드리고 싶군요. ]

"식사라곤 하지도 않는 컴퓨터가 말이 많네."


토니는 낮게 중얼거린 뒤에 소파에서 다리를 떼어내고 일어섰다.


"자, 일어났어! 레미가 누구였더라? 그 지루한 회계원?"

[ 레미 씨와 맥케나 씨는 둘 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마케팅 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

"아... 그리고 이 둘 중 누가 뱀파이어길래 8시 30분에 회의를 제안했지?"

[ Sir이십니다. ]


자비스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토니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내가 장난으로 한 말이었던가?"

[ 제 음성 분석에 의거했을 때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입니다. ]

"...최고네."


토니는 최단 기록만에 수트를 걸쳐 입고 거울 속의 자신을 비춰 보다, 셔츠의 옷감이 얇은 편에 속해 아크 리액터가 섬유 밑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멈칫했다. 그러나 결국 굳이 이런 것에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해서 내버려 두기로 한다.

게다가, 피터가 어떻게 반응할지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고.




*



결론적으로, 피터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토니가 The Hybrid Puppy에 들어서자마자 피터의 얼굴에는 형광등이라도 켠 듯 환한 웃음이 번졌고, 피터의 두 눈이 한 순간 토니의 가슴으로 향할 때도 그 미소는 한 치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일을 하고 있는 것은 피터 혼자였다. 이 시간 카페에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토니는 몇몇 눈동자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좇으며 무언가를 깨달아가고 있고, 곧이어 어떤 멍청이 하나가 사인을 부탁하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미스터— 토니!"


피터는 말을 시작하다가 갑자기 고친 다음, 토니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게도 거기서 말을 멈추지 않는다.


"어, 죄송해요, 성함이 미스터 토니이신 것처럼 말을 해버렸는데 사실은—아니, 당연히, 어..."


피터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토니가 다소 거만해보일 수 있는 웃음으로 대꾸한 뒤에 카운터 너머로 피터와 눈을 맞췄다. 그의 시선에 피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제 입술을 핥았고, 토니는 아직 잠이 제대로 깨지 않은 터라 그 동작에 시선이 안 가도록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그래, 다 잠 때문이지. 토니가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외상값 갚으러 왔어. 어제 거의 초인적인 양의 커피를 마셔놓고도 돈을 전혀 안 낸 게 기억 났거든. 다행이지, 보통 뭘 했길래 외상값을 지불해야 하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편이니까."

"아! 그, 저,"


피터는 말을 더듬고 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원래의 제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토니는 머릿속으로만 기분 좋게 특기했다. 그래, 확실히 이 관심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물론이죠... 토니."


피터는 마치 토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게 오늘 하루 최고의 일이라는 것처럼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 응당 그래야 하기는 했다. 토니는 그 특권을 아무에게나 부여해주지는 않으니까.


"아침 식사부터 하실래요?"

"그래, 뭐든지 상관은 없지만 테이크아웃 가능한 걸로."


토니는 손목 시계를 확인하는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동작을 이용해 티 안 나게 카페를 슬쩍 둘러보며 어떤 경로로 나가야 가장 사람이 덜 달라붙을 지를 탐색했다. 이미 최소 두 개의 핸드폰이 자신을 향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십 오 분만에 회의가 있거든. 으... 페퍼는 이런 일을 어떻게 꾸준히 할 수 있는 건지."

"사업체 경영과 집단 관계 역학에 걸맞는 적성을 가지셔서 아닐까요?"


피터가 커피 기계로 걸어가 기계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책에서 읽었어, kid?"

"TED 강연에서 봤어요. 포츠 씨가 직접 말씀하시던데요."


피터가 살짝 웃으며 한 말이 토니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하, 그날 재밌었지. 새로운 OS를 발표했을 때 그쪽에서 나한테 또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대체 왜 지구상 이 퍼센트 가량만이 이해할 수 있을—그리고 솔직히 그것도 정말 높게 잡은 거고—말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야 하냐고, 게다가 내가 새로 나온 사이버 보안 프로토콜을 베타 테스트하고 있을 수 있는 시간에 왜 강연 따위를 준비하겠냐고 따졌거든. 그랬더니 날 그만 괴롭히던데."


유리 진열장 너머의 피터는 여전히 웃고 있다.


"그냥 '스타크비전'을 설명하고 싶지 않으신 거잖아요."

"그것도 있지. 그런 건 애들이 알아서 알아내라 그래."

"그럼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걸요."

"아?"

"뭐, 적어도 네드 말로는 그래요. 네드는 천재지만 출시 당일부터 꾸준히 기반 코드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걔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토니가 카운터에 기댄 채 상체를 기울여 피터와의 거리를 좁힌다.


"넌 어떤데?"


피터가 단지 토니가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이유만으로 대화에서 서서히 얻어가던 탄력을 잃고 다시 원래의 당황하고 허둥지둥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는 건 토니에게는 마치 보상과도 같았다. 


"저, 음, 어... 저는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서요."


피터의 목소리는 거의 사과하는 것 같기까지 했다.


"아니 코딩하는 법은 알기는 하는데, 미드타운에서 기초적인 수업은 받으니까요, 하지만 음, 저는, 제 한계를 알아서."

"그럼 내 커피 기계에 설치된 그 새로운 알고리즘은 뭔데? 내가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은 잡히지만, 피터가 종이 백 안에 머핀과 베이글을 넣으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보는 건 솔직히 재밌었다.


"그건—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면 죄송해요, 근데 저는 혹시 커피 기계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그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았— 그래서, 그, 네드한테 물어봤어요. 아, 아니, 부탁했어요. 그래도 됐었—"


이쯤 되면 아무리 토니라고 해도 조금의 동정심은 들기 마련이었다.


"진정해, 피터. 잘한 거야. 나보다 훨씬 일찍 깨우쳤네."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그 미소. 젠장... 토니에게 당장이라도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부여하는 얼굴이다.

아니, 그건 계획에 없었지. 절대.

계획에 있는 건 외상값을 내고, 아침 식사로 받은 빵 값을 지불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토니는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고 피터에게 '다 끝나면 문자해' 라고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아무래도 주위에 녹화 기기가 너무 많아 그 이상으로 뜻을 전달하는 것은 도박과도 같았다.


심지어 회의에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뒤늦게 나타날 타이밍' 정도로만 지각할 수 있었던 토니는, 9시 이후부터 피터가 보내는 수많은 문자들에 그 회의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From: Peter


09:11 AM

누가 토니가 여기 계신 사진을 트윗했어요.


09:11 AM

카페에 계신 거요.


09:13 AM

이제 다들 단골이시냐고 물어봐요. 단골이세요?


09:15 AM

아, 이거 피터예요.


09:15 AM

파커.


09:25 AM

단골이시라고 할래요. 장사 잘 되고 좋잖아요  ;-)



"재밌는 일이라도 있으신가봐요, 스타크 씨?"


토니는 시선을 올려 벽에 띄워진 PPT를 다시 봤다. 이제 보니 산업 재해를 다루는 부분이어서 핸드폰을 확인하기 좋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기는 했다.


"네, 제가 이 숫자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게 되게 재밌네요. 아니면 이 통계들이라거나— 아니, 제가 하루종일 뭘 한다고 생각하세요? 작업실에서 내내 자위하고 있는 줄 아시나?"


토니는 보통 이렇게까지 저속한 표현을 쓰진 않는데—적어도 직장 내의 성희롱에 대한 세미나를 듣고 나서는—이 방법이 지나칠 정도로 고지식한 맥케나 씨를 짜증나게 하는 데는 최고라는 것을 발견해서 쓰기로 했다. 페퍼는 그녀가 '교양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토니에게는 그저 딱딱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망할 진주까지 차고 있잖아.


"안전 업데이트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따지고 보면 일부는 자비스가 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자비스를 토니가 만들었으니 성립하는 주장이었다.


"그건 제가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맞죠. 하지만 이 숫자들?"


토니는 일어서서 PPT의 통제권을 가져간 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평판과 관련 여론이 나와있는 장으로 빠르게 넘겼다.


"이건 당신네들이 고쳐야지. 그래서 고칠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바로 이렇게, 족히 4시간은 더 걸렸을 회의가 2시간만에 깔끔하게 끝이 났다. 토니가 문을 거의 나섰을 때쯤 맥케나가 그를 멈춰 세웠다.


"제안 하나만 더 할게요. 좀 신선하긴 해도,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지역 단계에서의 참여를 늘려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해서요. 북 캐롤라이나 주에서 쓰레기 매립지로 쓰이는 석호를 사들여서 그 진창을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쓴다거나— 뭔가, 좀, 우리가 그저 이익을 좇는 사업체가 아니라는 걸 서민들에게 보여줄 만한 거요."

"예산의 일부를 여기 맨해튼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할당하고 싶습니다. 최대한 브랜드 이미지에 좋은 영향이 갈 수 있는 벤처 목록을 작성해 봤어요."


토니는 레미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스타크패드에서 토니의 핸드폰으로 옮겨준 문서 속의 목록과 예산을 빠르게 훑었다.


"제 의견은 이메일로 보내드리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그저 가만히 있는다.


빌어먹을, 토니는 정말이지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기조차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싫다. 물론 '그게 끝인가요?' 같은 중요한 질문들 한정이지, '제 오클라호마에 사는 사촌이 곧 생일인데 생일 축하 메세지 하나 녹화해주실 수 있으세요?' 같은 건 제외했을 때 이야기지만. 토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 말이 신호였잖아요. 어서 가시죠."

"하지만 파일럿 프로젝트에 관해서—"

"그냥 전반적으로요, 스타크 씨—"

"젠장, 무슨 유치원도 아니고... 네, 언외(言外)의 의미라고는 들어보신 적도 없는 분들, 잘 들으세요.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여기 목록에 있는 곳들에 몇백만 불을 갑자기 쏟아붓기 전에 저도 좀 조사를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 무슨 도널드 트럼프도 아니고?"


그렇게 혼내듯 말하는 건 그들이 드디어 토니를 내버려두는 효과와 더불어 그가 The Hybrid Puppy의 기록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당한 구실을 제공했다. 토니가 자신의 제안을 '파일럿 프로젝트' 따위로 잘 포장해서 건넨다면, 피터가 지나친 사양 없이 적당히 받아들 확률도 저조하지는 않겠지.



*



작업실을 꽉 채운 클래식 락 음악 속에서도 토니가 피터의 문자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가 자비스에게 미리 피터가 그린 라이트를 보내면 즉시 그 음악을 끊어버리라고 지시해놓은 덕분이었다.


토니가 예상했던 것보단 늦은 시각이었지만, 이후에 카페의 CCTV 영상을 훑어보니 몇 시간동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손님들이 왔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토니가 도착할 때쯤은 카페에 적당한 양의 손님들만 남아있었다. 여전히 The Hybrid Puppy 로고가 그려져있는 베이지색 티셔츠와 스키니 진을 입은 피터는 계단 밑에서 토니를 기다리다가 토니가 들어오자 설치된 저지선을 열어주었다.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할 지 잘못 가늠했는지 거의 저지선 전체를 무너뜨릴 뻔 했다는 게 문제지만. 토니는 저지선이 땅에 떨어져서 이미 많은 이목을 끌고 있는 그의 방향으로 더 많은 시선이 쏠리기 전에 그것을 잡아 고정했다. 저 시선들을 보자 토니의 생각은 잠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소셜 미디어 조정자가 지금 토니가 입고 있는 수트가 아침에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옷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의할 근 미래로 향하지만... 뭐 어쩌겠어, 파파라치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토니의 관심 밖인데.


"커피를 팔아야지, kid,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셨어요! 아, 농담하신— 죄송해요, 다시 벡터가 아니라 영어로 생각하기가 좀 힘드네요."


토니는 계단을 올라가며 기계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낮게 웃었다. 

기계 옆에는 'Han shot first'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다. 티셔츠 속의 농담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보이는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은 손을 꼼지락대며 가만히 두지 못 하고 있다. 토니는 피터가 지난 며칠 간 했던 말들로 미루어보아 이 사람이 바로 네드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피터가 당황스러운 듯 움찔하며 서둘러 네드의 곁으로 가는 것을 보아 네드가 아직까지 여기에 남아있기로 하지 않았었다는 것 또한.


"야, 너 어머니 도와드리러 가야 한다며!"

"응, 근데 우리 누나가 일찍 나와서, 대신 도와드릴 수 있다고 해서..."


네드가 딱 루크의 포스 첫 시도만큼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 애들이 다닌다는 그 천재 학교에선 '거짓말하기' AP 과정은 없는 모양이었다. 토니는 반쯤은 진심으로 궁금해 했었다.


"제발 분위기 어색하게만 만들지 말아줘."

"그건 이미 실패한 것 같은데."


피터가 네드에게 속삭인 말에 토니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려고 노력하며 말하자, 예상 가능하게도 둘은 큰 눈으로 토니를 휙 돌아본다. 하지만 네드가 지난 할로윈에 코스플레이했던 사람을 만난 진성 팬의 얼굴을 하고 있는 반면 피터의 얼굴은 처음 두 번 만났을 때의 그 숭배하다시피 하는 눈빛은 지난 것 같다. 솔직히 지금쯤이면 그럴 때도 됐지.

토니는 최대한 무심한 손짓으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려고 한 동작이 먹혔는지 역시나 네드가 토니가 꺼낸 새 프로토타입 스타크폰에 자칫하면 꽤 짜증나는 소리가 될 수 있었던 작은 비명을 억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니는 거만한 미소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얼굴에 꽤 힘을 줬다.


"차가 3분만에 온다는데."


토니가 네드를 똑바로 응시했다.


"너, Han. 너 피터 도와서 이 괴물같은 기계 나를 수 있겠어?"

"물, 물론이죠, 스타크 씨! 저희 사실 나르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했는데 저희 힘으로 확실히 할 수 있어요."


토니는 차오르는 의심을 굳이 내뱉지는 않기로 한다.


아니나 다를까, 네드가 자신의 계산에 품은 자신감은 현실 속의 육체노동에까지 미치지는 못 하는 모양이었다. 토니는 '삶의 기술 101' 수업을 가르쳐야할지, 아니면 피터가 자신의 절친과 함께 큼지막한 기계를 들어서 작은 수레같은 것에 싣고, 방 몇 개를 지나서 화물 엘레베이터 앞까지 밀고 가고, 또 그 장치를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데에 낑낑대는 걸 보면서 팝콘이나 먹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이걸 다 1층에서 다시 해야할 텐데.

토니가 이 과정을 보면서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이 터무니없는 일련의 과정들 덕분에 토니가 피터의 엉덩이를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진짜 내가 안 도와줘도 괜찮겠어?"

"아니에요, 스타크 씨, 저희, 저희는 괜찮아요."


네드가 헉헉대며 대답할 동안 피터는 작업실로 갈 기회를 박탈당할까봐 걱정되는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있었다. 토니는 그래서 피터가 안심할 수 있도록 선심을 쓰며 윙크를 한 번 해주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엘레베이터 벽에 기댔다. 

피터의 손에는 순간 힘이 풀리지만 네드가 눈치채기 전까지 다시 작은 수레를 꽉 잡는다. 토니는 눈치 챘지만. 피터의 귀끝이 붉어지는 것까지도.


결국 네드와 피터는 차로 커피 기계와 자신들을 둘 다 넣는데까지 성공하지만, 그 때문에 네드가 갈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하기도 했다. 네드가 결국 떠나기는 했지만, 토니는 한 번이라도 더 그 애가 '세상에, 운전자가 없어, 안전한거야?'하는 독백 한 무더기를 다시 들어야 한다면 소프트웨어를 수정해서 차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어느 방식으로 의문을 품든간에—확 차로 쳐버리도록 설정해버릴 지도 몰랐다. 그래도 네드가 주절대는 말들을 들으면 어느 정도 프레임에 대한 이해는 있는 것 같으니까 살려둘 가능성도 있기는 했다. 뭐, 그리고 피터의 친구라는 것도 한 몫 하고. 토니는 그 애가 가까운 이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모르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그의 리비도에 지장이 가게 둘 수는—


 "죄송해요, 토니. 진작 간 줄 알았는데—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는데 어색해진 것 같고— 제 말은, 그때 테— 아니, 그 언젠가 외출하실 때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호하신다고 하셨는데..."


피터가 축 처진 어깨를 힘없이 으쓱였다.


"죄송해요."

"너무 그러지 마, 열광적인 팬들로 치자면 테드도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어."

"그럼, 네, 그럼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네드예요."

"아, 미안."


토니가 전혀 관심도 상관도 없는 듯 말했다. 피터는 아직도 토니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 한다고 오해하고 있어서— 물론 이는 토니가 예전에 꽤 용의주도하게 만들어내고 지금까지도 아주 유용한 거짓말이다. 마크 주커버그를 '맷'이라고 부르는 것만큼 무시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없으니까. 아, 기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가 방금 인용한 내 옛날 옛적의 TED 토크 생각하고 있었나봐. 어떻게 찾았어?"

"어떻게 찾— 아, 음, 완전 우연으로요."


토니가 피터를 믿어주는 척 할 동안 차는 토니의 개인 차고로 부드럽게 들어간다. 차가 정지하자마자 자동으로 열린 문의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토니와 피터가 일어설 수 있었다. 


차고는 사실 작업실의 연장이나 다름 없다. 혼자 쓰는 게 아니라서 작업실보다 아주 약간 더 정리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피터는 차 하나하나를 펫 스토어에 앉아있는 강아지같은 눈빛으로 휙휙 둘러보더니 감탄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묻는다.


"다 토니 꺼예요?"

"대부분. 몇 대는 페퍼 꺼."

"그래서어,"


피터가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늘였다.


"좀 더 깔끔한 것들이 포츠 씨 꺼겠네요?"

"계속 그렇게 까불다간 넘어진다, kid. 그리고 자비스한테 인사해. 자비스, 이쪽은 피터 파커."

[ 안녕하세요, 파커 씨. ]

"우와!"


피터가 서 있던 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토니는 그의 눈빛 속에서 놀람, 인식, 그리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다들 거치는 '센서는 어디 있지?'하는 의문이 모두 스쳐지나가는 것을 봤다. 그 의문의 결과는 항상 둘 중 하난데, 결국 그 사람이 토니에게 물어보거나, 센서들이 어디에나 있고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다는—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거나.

피터가 어느 쪽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안녕하세요 자비스!"


피터가 방 전체를 둘러보며 말함으로서 토니의 예상을 확인해주자 토니는 다시 그 움직이는 입술을 핥고 그 새로 혀를 넣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만나서 반가워요!"

[ 마찬가지입니다. ]


자비스의 짧은 대답에 토니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 가장 가까운 센서를 보며 '너 끝나고 봐'라고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그때 버터핑거와 더미가 웅웅대며 코너를 돌아 다가오는 탓에 토니는 열성적으로 돕겠다고 나서는 개체를 셋이나 다뤄야 했다. 결국 커피 기계를 원래 자리에 다시 설치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피터는 자신의 쓸모 있음을 몸소 증명하듯 1분 47초만에 토니에게 첫 커피 잔을 내민다.


"읏, 이거 무슨 블렌드야?"


피터의 미소가 더욱 환해질 동안 토니는 다시 한 모금을 꿀꺽 삼킨다.


"자체 제작 블렌드요.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나 이거 평생 정액 요금제로 받으면 안될까?"

"어, 그, 물론이죠, 제가 다시 와서... 배달할게요."


토니는 피터가 티 나지 않게 작업실을 이리저리 흘낏 보느라 말이 평소 속도의 절반으로 느려진 것을 발견하고, 머그잔을 다시 커피 기계 안으로 넣은 뒤 버튼을 누르고 피터를 향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투어 해줘?"


피터는 마치 토니가 자동차 한 대라도 주겠다고 한 것 같은 얼굴을 한다. 그것도 전혀 나쁜 생각은 아닌 게— 아니, 나중에. 일단 투어 먼저.


토니가 만약 피터가 자신의 가족의 카페에 그 파일럿 프로젝트의 투자를 받을 자격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금의 의문이라도 있었다면, 그 뒤 두 시간동안 피터의 재능이 너무도 확실하고 선명하게 드러남으로서 일말의 의문조차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피터는 토니의 뒤를 따라 작업실의 이곳저곳을 총총 튀듯 걸어다니면서 거의 에너지로 잘게 진동하고 질문이 가득 차다못해 넘쳐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질문의 수준들마저 기술 커퍼런스에서나 들을 법한 질문들이지, 열 여섯 살 바리스타의 입에서 나올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토니의 '아크를 동력으로 이용하며 운전사가 필요 없는' 자동차 프로젝트나 작고 반짝이는 구체의 홀로그램 영사기에 적절한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저건 뭐예요?"


토니는 피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콧잔등을 주름지게 찡그렸다.


"저게 바로 술에 취한 브루스 배너의 말은 절대 들으면 안 된다는 영원한 증거지. 최첨단 접착 기술 관련 실험이 좋은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장담하건데... 36시간 과학 마라톤과 재미없는 모금 행사— 샴페인은 괜찮았지만— 뒤에 결국 만든 게 초강력 접착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그렇지만은 않아."


토니는 방금 한 말을 강조하기 위해 그 슬픈 우윳빛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실험이 실패한 이후로는 이 덩어리가 영하의 기온에서 금속에 착 달라붙는 혓바닥처럼 이 테이블에 내내 달라붙어 있었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피터에게는 왠지는 몰라도 이 덩어리가 일어나서 가까이 갈 정도로 흥미로웠던 모양이었다.


"거미줄을 모방하려 시도하신 거예요?"


토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도'가 요점이지. 다시 한 번 해볼 시간이 없었거든."


피터가 다시 작업실을 둘러보는 눈빛 속에는 갈망이 잔뜩 담겨있어, 토니로 하여금 자신이 잘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갈망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기를 소원하게 했다.


"꽤 멋지지? 요즘 애들은 뭐라고 하더라? 쩐다? 죽여준다?"


피터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건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뇨, 음, 요즘은 '스타크하다'라고 하고 있어요. 요새, 그, 잇 워드예요."


토니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피터를 보다가 장난스럽게 그를 살짝 밀쳤다.


"또 까부네."

"주체할 수가 없어서요."


피터가 순진하게 미소 지으며 한 말에 토니 역시 마주 미소 지었다. 다만 토니의 미소에는 그보다 더 진하고 깊은 뉘앙스가 담겨있어, 피터가 얼굴을 옅게 붉히고 부산스럽게 제스쳐를 취해대며 말을 더듬게 했다.


"그치만 이건, 이건 진짜 멋져요, 어, 이거 다... 유익하고요! 그 급수 필터만 해도... 토니가, 토니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게 행운이네요."


그 말이 토니에게 미치는 영향은 토니의 얼굴 전체에 쓰여 있을 게 틀림 없었다. 토니가 표정을 감추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이미 그가 쓰고 있던 가면에는 손상이 다 간 것이나 다름 없었고, 이젠 숨길 수도 없었고, 젠장, 대체 어디까지 멍청해질 수 있는거지? 이제 피터도 토니를 쳐다보고 있고 텐션이 있고 뭔가가 더해지고 있고 토니도 결국 인간일 뿐인데 망할 계획 따위는 집어 치워도—


[ Sir, '저혈당 프로토콜'에 의거해 마지막 식사로부터 10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자양물 섭취를 권장합니다. ]


...끝내주네. 자비스에게 방해 받다니.

토니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확실히 끝나고 한 번 봐야겠군.


토니는 피터가 치는 뒷걸음질이나 '저 어차피 가봐야할 것 같았어요'하는 헛소리를 멈춰세우고 공표하듯 말했다.


"우리 시켜먹을거야. 자비스, 메뉴."


피터가 '아니에요, 토니, 저 괜찮아요,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라고 하는 동시에 그 메뉴는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띄워졌다.


"폐는 무슨."


토니가 양 팔을 큰 동작으로 벌리며 휘두르고는 코웃음을 쳤다.


"억만장잔 거 기억 안 나? 설마 너 마살라 좀 사준다고 내 지갑에 타격이라도 가겠냐고."


토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업실 책상에 등 뒤로 손을 뻗으며 기댔다. 다시 입을 열 때는 장난끼나 빈정댐은 모두 사라진 채로 진중하게 낮은 목소리였다.


"피터, 어서. 네게 저녁 식사 대접하게 해줘."


피터가 침을 삼켜서 토니의 눈은 자연스레 피터의 움직이는 목젖으로 향한다. 어쩌면 온 우주가 토니를 방해하려는 건 아닐지도—


딩.


토니는 벽에 자신의 머리를 쾅 부딪혀 버리고 싶다. 젠장, 괜히 그런 생각을 해서 징크스나 만들어버렸잖아!

피터는 이미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러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토니는 언뜻 화면에 '달마르 씨'가 띄워진 걸 본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사실에 LP판 컬렉션을 걸 정도로 확신하진 않았다.

반면 그걸 걸 정도로 확실한 건, 달마르 씨가 말하는 게 뭐든지 간에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것.


"노래 틀어져 있어요?"


피터가 입술을 깨물며 한 질문에 나온 대답이 무엇이든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무슨 종류의 노래요?"


그리고 대답을 듣고 난 피터의 이미 창백했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다.  


"바로 갈게요!"


피터는 통화를 끊으며 이미 차고 근처의 작업실 입구 부근에 내려놓은 가방을 가지러 재빠르게 향하고 있었다. 토니는 가볍게 뜀박질을 하며 그를 따라갔다.


"저, 저 가야 돼요, 정말 죄송해요."

"어디 가야 하는데? 퀸즈?"


짧은 끄덕임.


"태워줘?"


피터의 두 눈이 잠시 커지고 원래라면 아마 폐 끼치니 뭐니 하며 거절했겠지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말들은 모두 눌려 들어갔다. 토니는 거의 자신이 직접 운전해주겠다고 제안할 뻔 했지만, 처음으로 단 둘이 차에서 함께 덜컹거리는 순간에 그 애가 무슨 일인진 몰라도 이렇게 정신이 다른 데에 팔려있는 걸 원하지는—


아냐,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순수한 생각. 당장.


무슨 말 하고 있었더라? 맞다, 피터, 차, 퀸즈. 토니는 '그럼 저녁은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라는 말로 피터를 떠나보내지만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서 듣지는 못 한 거 같고, 그건 전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누가 자신을 무시할 수도 있지, 그럼. 완전 괜찮지. 전혀 예외적일 것 없이, 정말 흔한 일인걸.


"자비스."


피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토니가 입을 열었다.


[ Yes, sir? ]

"우선 엿부터 먹고."

[ 제가 어떻게 그 명령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건지 잘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sir. ]

"네, 네, 집어치우지 그래요, J. 대체 그 망할 짓은 뭐였어? 그리고 바레인 프로토콜 따위는 언급하지도 마, J, 우리 둘다 그게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건 잘 알잖아."

[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은 sir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sir. 그것이 제가 받은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지시입니다. ]

"네가 받은 가장 중요한 지시에서 귀여운 바리스타 키스하기는 예외로 둬야할 것 아냐."


그 말엔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토니는 눈을 굴렸다. 뭐, 어차피 대화 주제를 바꿀 때가 됐긴 했다.


"자비스. 메이 파커에 대해 알려줘."

[ Sir, 다시 한번 저혈당— ]

"나중에, J, 정보 먼저. 아, 그리고 피터 파커가 발신하는 전화를 모두 모니터하다가 911에 전화를 거는 순간 내게 전달해."


잠깐의 정적.


[ 물론입니다, sir. ]




*



달마르 씨는 그의 플랫과 피터의 플랫 사이의 복도에 플라스틱 상자 하나를 든 채로 서있었다. 피터는 그에게 잠깐 목례만을 하고 이미 열쇠를 꺼내쥔 채 그를 지나쳐 달려갔다.


현관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선율의 비발디에 피터의 뱃속은 납덩이가 내려앉은 듯 무거워져 피터는 문을 열기까지 열쇠꾸러미를 두 번이나 떨어트릴 뻔 했다.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메이는 소파에 누워있지 않다. 방 안에 있을 스테레오는 플랫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져 있었다.


아, 제발, 안돼...


피터는 화장실로 전력질주하다가 열려있는 문 사이를 보기 직전 아주 잠깐동안 번쩍이는 패닉에 휩싸여 얼어붙었다. 머릿속에 드는 온갖 생각들을 뒤로 하고 떨리는 숨을 내뱉고 문을 연다.


비어 있다. 피도 없다.

하지만 약이 있는 서랍은 열려있다.


"안돼, 안돼, 안돼...."


피터가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리고는 달마르 씨의 걱정어린 시선이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붙는 것을 뒤로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메이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메이는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순간 피터의 몸은 메이의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경직된다. 안돼, 왜 움직이지 않으시는 거야...


메이는 피터가 맥박을 찾으려 경동맥을 짚고, 얕은 맥박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숨을 참을 때에도 미동도 없는데, 대체 왜 안 잡히는—


찾았다.


피터의 온몸은 안도로 젖어 늘어졌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만 발걸음 소리로 이웃이 아직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 피터가 표정 관리를 한 뒤 거실로 나갔다.


"그냥 주무시고 계세요. 지난주에 많이 못 주무셔서, 그래서, 어, 일찍 주무셔야 했나봐요."


메이와 피터를 오랫동안 알아온 달마르 씨는 그 말이 암시하는 바를 알아챈 듯 했다. 경직된 미소와 함께 들고 있던 음식으로 가득 찬 플라스틱 상자를 내려놓은 그가 다시 자신의 플랫으로 향할 동안 피터는 다시 부리나케 메이의 곁으로 갔다. 그저 자신이 안심할 수 있게 다시 맥박을 짚던 피터의 발에 바닥에 놓여져 있던 무언가가 채였다.

플라스틱 병이 굴러갈 동안 그 안에 든 약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너무도 똑똑히 들렸다.


피터는 쭈그려 앉아 그 병을 줍고는 다시 차오르는 불안감과 함께 병을 열어 보지만... 

괜찮다, 어제보다 그저 두 알만 줄은 채다. 피터는 두 눈을 꾹 감고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은 손바닥을 차가운 뚜껑에 대고 힘을 줘 보지만 타는 듯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찮아, 내일 다시 일어나실 거야, 다 괜찮아. 피터는 자신이 진정할 수 있을 때까지 마치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그는 내일이 월요일이고, 두 알이라는 건 메이가 다음날 아침까지 일어나지 않으실 테니 피터가 새벽 6시에 직접 가서 카페를 열어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 저 화요일에 스페인어 퀴즈도 있단 말이에요, 메이."


메이가 듣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괜히 징징거려본 피터에게는 어차피 학교 가기 전 3시간동안 메이의 일을 대신 하고 가는 게 처음도 아니다.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가능성보다야 훨씬 낫다. 그 다른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피터에게 악몽을 선사했고, 피터는 메이까지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대신 피터는 약통을 다시 화장실 서랍에 넣어두고, 음악을 끄고, 5시간 후로 알람을 맞춘 뒤 이제 학교 가기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할 역사 숙제를 하러 책상 앞에 앉았다. 단 한 시간 전과 비교하면 차이는 지나칠 정도로 확연하다. 피터는 토니의 노골적인 플러팅을 떠올리며 책에다가 대고 미소 짓다가 그의 AI의 무례한 방해가 생각이 나 시무룩해졌다. 어쩌면, 매우 스마트한 컴퓨터가 토니 스타크가 피터를 키스하면 안 된다고 결정을 내렸다면, 토니 스스로도 피터에게 관심을 줄 가치가 없다고 결정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지도 몰랐다.


뭐... 피터는 다시 메이의 방 쪽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편이 나을 지도 모르지.









*로미오와 줄리엣 법: 미성년자와의 성적 접촉이 주로 금지된 미국에서, 텍사스 등 일부 주(州)에 한해 상호 합의 하의 성적 접촉을 맺는 두 명의 사람이 둘 다 미성년자일 경우 혹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성인과 미성년자일 경우 이를 허용하거나 처벌을 약화시키는 법. 보통 주에서 지정한 나이 차이의 기준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미성년자들끼리의 성적 접촉이 있을 경우 양쪽이 다 statutory rape 혐의로 처벌 받을 수 있고, 이때 statutory rape는 '법정 강간'으로 미성년자와의 성적 접촉을 통칭합니다.)



- 유난히 어감을 살리기 위한 의역이 난무했던 챕터... 

- 유난히 긴 편이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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