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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8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피터는 그 직전 모든 것을 예상한다. 토니의 주의가 보일 듯 말 듯 바뀌는 순간이나, 그의 어둑하니 깊어지는 두 눈이나 한순간 피터의 입술에 닿는 시선— 토니가 손을 들어올려 피터를 가까이 당기기 전부터, 그 모든 것이 이미 눈에 들어와 있었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피터는 잠시 자신의 판타지에서만큼 자신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거나 우아하지 않고 토니는 훨씬 더 경험이 많아서, 정말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차이가 나는 수준이라서, 자신은 절대 토니만큼 잘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패닉하지만—


이내 토니의 입술이 피터의 입술에 맞닿고 피터의 머릿속에 남는 생각은 '드디어!' 뿐이다.


피터가 해왔던 그 어떤 상상과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다. 토니의 입술이 단단하고 자신 있게 맞물려오고, 피터가 그토록 자주 상상했던 토니의 턱수염이 피터의 살결에 닿는 그 감촉이 그를 자극해오는 와중에 키스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것처럼 강하고 또 격렬해서 피터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이런 건 평생토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동물적인 욕구로 가득 차 있는, 그리고, 또— 아.

토니의 혀가 입술 새를 가르고 들어오는 것을 느낀 피터가 칭얼대는 듯한 신음을 냈다. 피터의 골반에 놓인 토니의 손은 피터를 그 자리에 고정시키면서 동시에 그가 토니의 수트 옷깃을 잡아당기고 둘의 몸이 딱 붙을 때까지 당기도록 부추키는 효과를 주었다. 


"읏."


토니가 맞닿아있는 입술 새로 신음했다. 그것을 더 가까이 와도 된다는 암묵적인 허락으로 받아들인 피터는 자신의 작업복의 싸구려 천과 토니의 고급스럽게 재단된 조끼가 비벼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토니의 가슴 위로 올려진 손이 천천히 토니를 쓸어내려가며 아크 리액터의 테두리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내 토니의 조끼의 첫 단추를 찾은 피터에게는 이 믿을 수 없는 키스 중에 손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나 다름 없으니, 지금 옷을 벗기려고 다급하게 애쓰는 중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순간 피터가 무의식적으로 골반을 움직여 토니의 허벅지가 피터의 서서히 일어서는 성기 위로 닿는다. 그에 따라 성기 위로 느껴지는 무게감에 피터는 순간 정신이 팔려 키스의 리듬을 잃는데, 순간 내뱉은 헉 하는 숨소리는 토니가 곧 다리를— 숨소리처럼 얕은 웃음소리로 미루어보아 일부러—조금씩 움직이며 자극을 주자 낮은 신음소리로 바뀌었다. 


"토니,"


피터가 숨소리가 반쯤은 섞인 목소리로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토니의 이미 커진 동공이 확장되고 미소가 더 진해지는 것까지 본 피터는 토니가 더 세고 눅진하게 자신의 것을 눌러오는 감각에 눈을 감았다. 토니의 한 손은 여전히 피터의 뒷목을 잡은 채로 따뜻하고 무겁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피터는 토니의 오 드 콜로뉴를 맡을 수 있는데, 어딘지 복잡미묘하면서도 인상적인 그 향에 피터에게 몰아치는 수많은 감각들이 더해지니 오싹할 정도의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또다시 올라오는 신음을 피터는 이제 참지 않고 마음껏 내며 토니의 어깨 위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 자세에서는 토니의 비싼 정장 바지 밑에서 그의 성기가 일어서 있는 게 똑똑히 보여서, 토니의 가슴에 닿아있는 피터의 손은 더욱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기대와 흥분과 마찰감과 그냥 단순히 토니가 피터 때문에 섰다는 사실의 짜릿함이 뒤섞여 피터의 안 그래도 과민해진 뇌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순간 터져나오는 욕구에 피터는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이 자세에서 움직인다는 건 토니의 허벅지가 피터의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온다는 뜻이 되기도 하지만 다음 순간 피터의 입술이 다시 토니의 입술을 찾음으로서 그런 건 상관 없게 된다. 피터가 입술을 부딪힐 때 둘의 코도 어색하게 부딪히지만, 피터가 자신의 서투름을 부끄러워하기도 전에 토니가 자세를 틀며 제 몸을 피터의 몸에 밀착시키며 찍어눌렀다. 가슴부터 성기까지 모두 맞닿도록.


피터는 어느 감각에 집중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의 입 안을 능숙하게 헤집는 혀나 뒷목을 살짝 누르는 엄지를 느껴야 할 지, 아크 리액터의 끄트머리가 자신의 가슴을 찔러오는 것을 느껴야 할 지, 아니면 토니의 발기한 성기가 자신의 것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할 지.


"젠장,"


피터는 거세게 몰아치는 감각이 버거워 잠깐 고개를 뒤로 뺐다. 


스스로도 뭘 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뭔가 더 원한다는 건데, 이 키스를 더 원하고, 이 마찰의 감각을 더 원하고, 그냥 토니를 더 원하고 있었다. 피터의 입술은 계속되는 키스로 부어오른 것 같고 눈은 아마 초점이 흐려져 정신 없어 보일 텐데, 토니에게는 이 모든 게 마음에 드는 지 그가 피터의 머리칼 사이로 거친 손 하나를 넣으며 피터를 벽으로 몰고 가 그의 어깨와 등이 벽에 부딪히게 했다. 피터가 벽과 토니 사이에 갇힌 채 이런 식으로 거칠게 다뤄지는 게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할 즈음 토니가 다시 피터에게 다가와 몸을 밀착시켜 피터의 몸에는 다시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 흘렀다. 토니는 피터보다 반 뼘 정도 커 그의 발기한 성기는 피터의 아랫배를 찔렀다. 이 감각은 피터로 하여금 둘 사이에 옷이 없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하게 하지만... 토니가 다시 피터에게 키스함과 함께 모든 이성은 날아가 버린다. 


피터는 토니의 어깨를 꽉 쥐며 손톱을 파고들게 했다. 도저히 골반을 가만히 놔두지를 못 하겠고, 세상에, 쾌감이 점점 쌓이면서 커지는데 정말 최고고, 세상 그 무엇도 이렇게 기분 좋을 거라곤 상상도—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


피터의 꽉 감겼던 눈은 혼란스러움에 깜빡이며 열려 토니의 뭔가 억누르는 듯한 얼굴과 그가 피터의 머리칼에서 손을 빼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듯 비비는 것을 담았다.


"무슨— 저 뭔가 잘못했나요?"


피터의 목소리는 살짝 쉰 것도 같지만 토니는 똑똑히 들었는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니, 다 내 탓이었어."


토니는 "젠장!" 하는 큰 욕설과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피터는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한 발짝 내딛지만 토니는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의 반대쪽 손을 펴서 올리며 피터를 멈춰 세운다.


"그치만, 저 잘 이해가... 안 좋으셨던 거예요?"


피터는 자신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손을 어떻게 두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체를 스스로 껴안듯 두르고 나니 이건 또 멍청해보였다. 


그때서야 피터는 토니의 표정이 엉망인 것을 보고 순간 걱정이 돼 자신의 서투름에 대한 모든 생각을 잃었다.


"무슨 일이에요? 다치신 건 아니죠? 아니면, 아니면 제가 수트를 구긴 거예요? 제가 수트를 망친 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피터의 눈에 수트는 멀쩡해 보이기는 한데 자신이 실크고 뭐고 하는 거에 대해선 알 리가 없으니까. 토니가 눈을 좁혔다.


"잠깐. 널 강압적으로 다룬 건 난데 넌 지금 내 수트 걱정이나 하고 있는 거야?"

"하나도 안 강압적이었어요! 진짜... 최고였어요."


토니는 몇 초간 대답하지 않는다. 피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 쪽 다리로 무게를 싣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무게를 싣는 것을 반복하며 자신을 무겁게 짓눌러오는 침묵에 죽을 것 같다고 느꼈다. 정말, 그 정도로 못 했나?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 kid."

"네? 왜요, 무슨 소리—"

"너 열 여섯 살이야."


토니가 이를 악물다시피 한 목소리로 피터의 말을 끊었다.


"젠장, 열 여섯 살이라니."

"저 애 아니에요! 저 많이 해봤어요, 이미 뭔가 많이 시도해봤단 말이에요, 저 더 하고 싶어요, 제발요, 토니—"

"내가 감옥에 갔으면 좋겠어?"

"저 토니랑 같이— 네? 아뇨, 물론 아니죠! 대체 왜 그런— 아니에요."


토니가 마치 논점 하나를 증명한 것처럼 손을 펼쳤다.


"그럼 우린 이러면 안돼, kid. 아니, 너 애 맞아, 피터, 법적으로 따지면 무조건 애지. 넌 동의할 수가 없고 난—"

"할 수 있어요!"


피터는 토니에게 다시 한 발짝 다가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할 수 있고, 저 해요, 동의한단 말이에요, 저 이거 진짜 하고 싶어요, 세상에, 제가 얼마나 하고 싶은지 모르실— 그, 제, 제 꿈들이랑 판타지들이랑 그—"

"젠장, 그만."


토니가 반쯤은 신음하는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TMI. 그리고 내가 아량이 큰 남자가 되는 데에 도움을 전혀 안 주고 있어."

"아량만 큰 게 아니시던데요, 방금 느낀 바로는."


피터는 생각 없이 말해놓고 잠깐 멈칫했다가 그냥 웃어 넘기기로 했다. 토니도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능글맞게 웃지만 이내 이 모든 걸 멈추려고 했었다는 걸 기억해냈는지 표정을 다시 관리하려고 들었다. 피터는 태어나서 그 누구에게도 이 정도의, 뭐랄까,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토니 스타크가 자신 때문에 말하던 흐름을 놓칠 정도로 자신이 그를 동요시킨다고 생각하니 최고인 동시에 조금 벅차기도 하다.


"일부러 교란시킨 거지? 사악하기 짝이 없네."


토니는 농담을 던져주지만 곧바로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kid. 나도 정말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거야. 이 정도의 리스크에 나를, 그리고 내 회사를 노출시킬 수가 없어. 특히 내 회사를. 회사 주가가 0으로 떨어지면 네가 칭찬했던 그 대단한 발명품들은 어디서 오지?"

"...아."


피터는 해 본 적도 없는 생각이었다.


"그래, '아.'"


토니가 깊게 숨을 들이쉴 동안 피터는 다시 제 몸을 컨트롤하려 애를 썼다. 멍청한 호르몬 같으니. 하지만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없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상상하는 건 발기한 성기를 다스리는 데에 꽤 놀라운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해했지, kid?"


피터는 고개를 들었다. 토니는 그들이 이 모든 짓을 시작하기 전만큼이나 평온해 보였다. 피터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서, 색채 배합은 어떻게 할래?"



*



작업은 자정 쯤 마무리된다. 피터는 자비스가 베이지와 빨강 조합의 디자인 홀로그램을 거두어가는 걸 보며 침을 삼켰다.


"왜 생각을 바꾼거야?"


계단 쪽으로 함께 걸어가던 중 토니가 물었다.


"하늘색 한다며."


피터는 제 운동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제 삼촌은, 아마... 아마 신경 안 쓰셨을 거예요. 항상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그리고, 그..."


피터가 떨리는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항상 더 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그냥 작은 카페 하나 따위가 아니라... 제 말은, 어쨌든 카페가 더 잘 되게 하는 거잖아요. 그럼 손님도 더 많이 올 거고, '동네 어벤져스'에 대한 소문도 더 낼 수 있고... 네. 아마 빨간색도 괜찮다고 하셨을 거예요."

"현명하신 분 같네."

"벤은 최고셨어요."


피터는 미소를 머금고 말하다 벤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차오르자 천천히 웃음을 거뒀다.


"음, 그래서, 내일 정오 맞죠? 뭐라고 하셨더라, 내일..."

"그래, 내일 1층부터 치우고 구조물 관련 문제 해결한 뒤에 서서히 윗층도 건드리는거지. 돈은 아마 월요일에 올 텐데, 혹시 숙모가 면접 준비는 다 해놓으셨나? 너 근무 시간 줄면 기술은 같이 건드리자고. 물론 그건 내 작업실에서 하는 게 낫겠지, 짜증나게 손님들이 관찰하고 있는 건 싫으니까."


피터는 토니의 작업실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의한다. 


뭐, 12시간 전만 해도 토니 스타크와 키스하는 것도 전혀 믿지 못 했겠지만... 물론 이제 그건 더 이상 할 수가 없고. 피터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토니의 입술을 힐끔 쳐다봤다. 토니는 눈치를 챈 것 같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 상당한 거리를 둔다.


"어, 음, 내일 뵈는거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토니는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 없이 코너에 세워져 있는 운전자 없는 차 두 대 중 앞에 있는 차를 탄다. 피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가 떠나버려 피터는 하는 수 없이 두번째 차를 퀸즈로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탄 피터가 재빨리 토니에게 '태워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보낸 문자에는 '언제든지, kid'라고 답장이 왔다. 피터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 문자를 보며 좋아하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는 메이가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소파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터는 약이 담겨 있는 서랍과 메이의 방 안을 확인한 뒤 그녀가 고르게 호흡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소파 옆에 쭈그려 앉았다. 떨어져내린 이불을 다시 메이의 어깨 위로 덮어주고 그녀 정수리에도 잠시 뽀뽀하고 떨어진 피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오늘 토니 스타크랑 키스했어요."


그냥 한 번만 소리 내서 말하면 좀 더 현실같을 것 같아서.


"또 하고 싶지만 안 된대요. 법이란 건 멍청해요, 정말 너무 싫어... 토니도 절 원하신대요, 믿어지세요? 정말로요— 하지만 토니 말이 다 맞아요..."


피터가 한숨을 쉬었다.


"큰 그림. 우리는 더 큰 그림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숙모는 피터의 예상대로 미동도 하지 않으시지만, 피터는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다.








일주일 후



솔직히, 브루스가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자신이 딱히 할 일이 없는 평화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는 날이면 토니는 항상 그걸 망쳐놓을 방법을 찾고는 하니까. 2012년에 그들의 우정도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도 내내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주 내내 토니는 평소보다도 훨씬 바빴다. 한 달동안 CEO 노릇을 하느라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PR팀이 꾸린 새로운 파일럿 프로젝트 때문에. 보통 토니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돈만 제대로 처리되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어째선지 The Hybrid Puppy는 다른 모양이었다. 거기 커피가 끝내준다는 사실은 브루스도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토니가 CEO 행세를 하는 마지막 주동안 그 카페가 이렇게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 또 집중력 흐트러졌네. 브루스는 현미경에서 잠깐 고개를 들고 세 번 정도 숨을 깊게 들이쉬며 집중력을 가다듬은 뒤 맑은 머리로 다시 연구로—


"하아."


...그렇지, 토니가 대놓고 힘겨워하는 한숨과 함께 현미경 바로 반대편의 의자 위로 철퍼덕 앉는 건 꼭 이 순간이어야만 했겠지. 토니는 브루스의 시야 정가운데에 있는데—물론 현미경에서 고개를 든다면 말이다. 그래서 브루스는 일부러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토니는 다시, 이번엔 좀 더 짜증나는 목소리로, 한숨을 쉰다. 브루스가 입을 열었다.


"나 좀 바쁘거든, 내 앞에 앉아계신 누군가가 직접 주신 일 때문에? 후생유전학은 내 전공이 아니라는 거 알고는 있는거지?"


토니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 좀 정신 산만하게 만들어봐, 브루스."


이제 한숨을 쉬는 건 브루스다. 그는 페트리 접시에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토니는 이제 징징대기 시작하는데, 언제 들어도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브루스으으으, 그거 치워봐, 나중에 해도 되잖아."

"CIA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걸."

"모르겠고, 이게 더 중요한—"

"KGB를 무시했을 때 어떻게 됐는지 기억 안 나?"

"그래, 거기서 사이버 전쟁을 일으키려는 걸 나한테 딱 들켰—"

"마지막으로 말하건데."


브루스는 토니가 더 헛소리를 하느라 시간을 뺏어서 자신이 밤새 일하게 되고, 다음날 브런치 계획마저 취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토니의 말을 잘랐다.


"그거 사이버 전쟁이 될 가능성 없었거든. 과장하지 말고 나 방해도 하지 마."

"하지만 지금 내 샤워실에 열 여섯짜리 바리스타가 있고 나 당장이라도 올라가서 걔가 있는 샤워실에 들어가고 싶단 말이야!"


브루스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토니의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브루스는 오늘 그냥 집에 있을걸 그랬다고 절실히 후회하기 시작한다.


5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토니를 알아온 브루스에게는 현재 토니의 눈 속에 담긴 절박함이 얼마나 솔직한지가 확연히 보였다. 문제는 그 솔직한 절박함이 오히려 더 수수께끼를 자아낸다는 것이고. 브루스는 하던 실험을 정리하고 테이블 주위를 돌아가 의자를 하나 꺼낸 뒤 제 절친을 마주보고 앉았다.


"네 샤워실에 왜 열 여섯짜리가 있는지 내가 알아야할까?"

"최고의 커피 기계를 만드는 중이니까! 적어도 만드는 중이긴 했지, 근데 그 칠칠맞은 게 윤활유를 너무 많이—"


브루스는 순간 사레가 들려 콜록댔다.


"잠깐, 뭐라고?"


토니가 눈썹 하나를 치켜들었다.


"윤활유. 기계에 쓸 거 말이야. 세상에, 불순한 생각은 좀 집어넣지 그래."

"미성년자와 섹스하려는, 즉 법률로 규정한 강간을 하려는 건 넌데, 생각이 불순하다고?"


브루스의 눈에는 자신이 법 얘기를 꺼내고 들자 토니가 움찔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인턴이야? 대학생만 뽑지 않았나?"

"대학생만 뽑는 거 맞고, 인턴 아니야. 바리스타라니까. 심지어 그냥 바리스타도 아니고 끝내주는 바리스타지. 그리고 섹시하다고 내가 말했었나? 똑똑하다는 것도? 작업실에 있는 커피 기계 고친 사람도 걔라니까."


이제 브루스도 조금 흥미가 생긴다. 자신도 그 커피를 마셔봤고, 끝내준다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하니까. 그리고 물론 토니가 그 기계를 만든 사람과 잘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동의 연령 이하의 미성년자는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2015년의 그 수석 졸업생 관련 난리 이후에는.


매우 편리하게도, 브루스의 궁금증은 문가에 나타난 사람으로 단번에 풀린다.


피터다. The Hybrid Puppy에 브루스가 버키와—그리고 따라서 스티브와—함께 브런치를 먹을 때마다 보는 얼굴. 다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피터가 토니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 티셔츠를 입고 있고 머리는 물기로 축축히 젖어있는 채였다. 브루스는 시야 한 켠에서 자신의 절친이 피터를 보자마자 제 입술을 핥으며 눈을 게슴츠레 뜨는 것을 목격했다.


또 브루스는 토니에 푹 빠진 젊은 남자들이 토니 때문에 볼을 붉히는 것을 많이 봐왔지만, 그 누구도 지금 피터가 내짓는 표정처럼... 진정성 있고 진실된 얼굴을 하지 않았었다.


이런, 이거 결말이 영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브루스가 기침하며 말하자 피터는 깜짝 놀라며 이제서야 자신과 토니 스타크 이외에도 지구상에 다른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자각한 것처럼 굴었다.


"아, 음, 안녕하세요..."


피터의 두 눈은 브루스를 알아보고 크게 뜨여졌다.


"'차이 티에 우유는 아몬드 우유' 씨!"


한 박자 간의 정적.


"세상에, 브루스, 저 문구가 박혀있는 티셔츠 하나 있어야겠는데!"


토니가 놀리듯 한 말에 브루스는 '아냐, 필요 없어!'라고 항의해보지만 이미 토니의 머릿속에 확정된 사안이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다. 그저 옷장에 프린팅 되어 있는 티셔츠 하나가 더 추가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대신 브루스는 피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브루스 배너입니다."


보통 브루스가 인사를 하면 토니에게 반한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듯 성의 없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도의 대답을, 그마저도 운이 좋을 때만,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피터는 브루스에게 단번에 다가와서 그에게는 익숙치 않은 열렬함으로 악수하며 말을 퍼붓는다.


"브, 브루스 배너시라고요? 그 브루스 배너요? 그, The New Yorker에 분자 어셈블러가 현실화될 수 있고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던 사설 쓰신 배너 박사님이요? 그리고 다음 세대의 물리 교과서를 현재— 아, 죄송해요!"


브루스는 드디어 피터의 꽉 잡은 손으로부터 제 손을 빼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만나뵙게 되서 정말 영광이에요! 저 진짜, 박사님이 쓰신 물리의, 뭐, 모든 것에 대한 에세이 읽기 전에는 물리 정말 못했었는데— 제목이 아마, 물리가 물리지 않는 이유, 말장난 맞음, 그거였죠? 정말 감사해요, 제 물리에 대한 이해도를 완전히 바꿔 놓으셨어요."


브루스는 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토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그가 이 남자애의 열의에 거의 침을 흘리다시피 하느라 브루스는 안중에도 없어보이고. 결국 브루스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로 하지만, 어차피 피터가 삼인분 이상의 수다를 떨고 있어서 상관 없어보였다.


"이거 정말 멋진데요! 배너 박사님이 제 카페에서 내내 브런치를 드시고 계셨다니, 버키는 대체 왜 박사님이랑 아는 사이라고 말 안 해주신 건지, 바로 저번주만 해도— 아, 이제 알겠네요! 네드랑 제가 물리 숙제하느라 진짜 고생하고 있었는데 버키는 계속 웃기만 하고, 왜 웃냐고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셨었는데, 아마 저희가 공부하던 학설을 세우신 분이랑 아는 사이셔서— 저희 그때 박사님의 브라이트-휠러 과정에 대한 해석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버키가 말만 하면 바로 박사님의 도움을— 아, 잠깐, 죄송해요, 방해할 생각은, 제 말은, 아마 너무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제가 한 말은 다 잊어주세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브루스는 어색하게 말해보지만 이 길었던 칭찬을 조금 불편해했다는 게 얼굴에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았다. 토니가 브루스와 PR팀을 방 안에 함께 감금시켜서 그들이 브루스를—그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지만—코치하는, 그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브루스가 아직 겪지 않아서 표정 관리를 배우지 못 한 게 안타까워질 정도였다. 

어색하다 못해 곤란한 정적이 더 길어지는 것을 막은 건 토니였다. 


"뭐, 이제 '안전과 건강' 관련 지침은 다 따른 것 같으니 하던 거 마저 해야지?"


토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기계도 만들어야 하고, 윤활유도 발라야 하고..."


그 말에 피터는 당황한 듯 기침을 했지만, 곧 그가 토니에게 짓는 무언가 다 아는 듯한 미소는 브루스로 하여금 제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을 겪어야하는지를 자문하게 했다.


"토니, 먼저 잠깐 나 좀 볼 수 있을까? 이거 순서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토니와 피터가 단 둘이 작업실의 밀폐된 공간으로 가기 전 브루스가 먼저 토니를 막아세웠다. 그리고 단 둘이 작업실이라니, 그곳에 허락되는 사람의 수를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벌써 적신호가 울리는데. 

토니는 피터더러 먼저 가라고 손짓하지만 피터는 바로 그 말을 따르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브루스에게 다가서며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어, 제가 가끔 말이 주체가 안 될 때가 있어서... 하지만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최고였어요! 그리고 다음번에 카페 오실 때 어색하지 않게 노력할 테니까, 꼭 다음에도— 아, 그, 네드가 뭐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해요, 그래서 오실 때 걔가 있다면 미리 사과 드릴게요, 제 말은..."


피터는 문장을 마무리하는 대신 어깨를 멋쩍게 으쓱하는데, 브루스는 그 동작을 '사랑스럽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을 거예요."


브루스가 피터를 안심시키듯 말하자 그는 숨을 내쉬더니 긴장한 것 같은 미소와 귀끝까지 붉어지는 얼굴을 하고 실험실을 나섰다. 실험실의 방음 처리된 문이 닫히자마자 브루스는 토니를 돌아보는데, 마주한 토니는 아마 세 살 때 마스터했을 '누가요? 제가요?' 라고 하는 것 같은 순진한 척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이 얼굴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이 그저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라는 알고 있어 토니를 그저 말 없이 바라보았다. 결국 토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마치 그 정도의 참을성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듯이. 동사의 형태에 브루스가 멈칫했다.


"안 할 거야?"

"그래."


그리고 흐르는 수 초간의 침묵.


"...이미 뭔가 하긴 했나보네?"


토니는 짜증스러운 신음을 내뱉다 브루스를 째려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정신과 의사는 아니라더니! 솔직히 말해봐, 심리학 박사학위 하나 숨기고 있는거지?"

"물론이지."


브루스가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다.


"생화학 학위랑 공학 학위 바로 옆에 뒀어. 다음에는 창작 댄스 박사 학위나 하나 딸까 생각 중인데, 어떻게 생각해?"

"그 학위에 걸맞는 몸매를 갖고 있긴 하네, 달링."


토니가 장난스럽게 받아친 뒤 문으로 향하는 것을 브루스가 단호하게 토니, 라고 이름을 부르며 막아세웠다. 토니는 마지못해 돌아서는 것 같았다.


"응, 자기야?"

"지금 내가 형사 법정 앞에서 증언할 때 합리적인 부인을 할 수 있도록 말 돌리는 거야?"

"법 얘기는 그만 좀 하지 그래?"


토니가 현미경을 만지작대며 대답을 회피하고 있어 브루스가 토니의 손을 쳐냈다. 토니는 이내 서두르듯 빠른 목소리로 시인하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는 브루스의 걱정을 더하기만 했다.


"그냥 키스 한 번이었어, 그걸로 끝. 감옥에 몇 년 갈 정도의 무언가는 없었다고."

"아직은."


브루스가 집어내자 토니가 움찔한다. 잠시의 정적 끝에 브루스가 말했다.


"이런 법률이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둘 사이의 권력 불균형은... 어마어마하지, 나이 차를 따지지 않아도. 그러니까... 조심해, 토니, 알았지?"

"잠깐— 지금 '바리스타랑 절대 자지 마'라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뭐? 뭐라고 했어 방금?"


브루스는 눈을 굴리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내 말은, 결국 넌 토니 스타크고 내가 뭐라고 하든간에 네 고집대로 할 거라는 거지."

"완강하다는 말을 잘못 한 것 같은—"

"끈질기다고 볼 수도 있겠고."


토니는 브루스를 몇 초간 더 째려보다 기가 꺾인 듯, 그리고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애가 내 블랙 사바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 브루스..."


브루스는 페트리 접시에 얼굴을 쳐박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는 좋은 친구니까, 이상할 정도로 기꺼이 도와주려 드는 자비스에게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업스테이트 지사에 생긴 문제를 아주 조금만 과장해서 토니에게 전달해 토니와 피터의 작업 흐름을 방해하도록 지시한다. 

타워를 떠나는 피터의 침울한 강아지같은 눈동자를 CCTV로 보게 된 브루스는 약간의 죄책감이 일어 토요일에 브런치를 먹고 나서는 그에게 큰 팁을 주리라 속으로만 맹세했다.











본문에서 피터가 입은 토니의 블랙 사바스 티셔츠
본문에서 피터가 입은 토니의 블랙 사바스 티셔츠

- 빨리 가져오고 싶었는데 첫 장면 느낌을 잘 살리고 싶어서 수정을 많이 하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 한국어 자막을 본 적이 없어서 토니랑 브루스의 반말 존댓말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다가 5년 된 우정이고 토르 3 트레일러에서도 브루스가 반말을 하길래 반말-반말로! 토니는 당연히 반말이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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