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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9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그래서 다음 전시회에서는 피터를 누드 모델로 쓸 거야."


피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카페의 테이블 너머로 MJ가 비아냥대며 말했다.


"아, 아직 듣고 있긴 했나보네, 파커."

"그래, 너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하도 정신이 팔려 있는 탓에 네드에 질문에 피터의 혀 끝까지 내 방에서 토니가 빌려준 블랙 사바스 티 입고 있는 생각, 이라는 말이 차오르지만 다행히 메이가 차가 든 보온병을 들고 나타남으로서 그 말이 그대로 나와버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이가 보온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동네 어벤져스'의 웹사이트 개편 대책 위원회 멤버들 중 차를 마시는 사람은 스티브와 MJ 뿐이지만, 어째선지 버키, 네드, 그리고 피터까지 함께 차를 마셔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현재 그들의 대책 위원회는 원형 테이블에 다함께 앉아 스티브와 버키가 함께 벤치를 쓰고, MJ, 네드, 그리고 피터가 의자에 앉아있는 채로 회의하고 있었다. 


버키는 따지고 보면 대책 위원회에 속해 있지는 않은데, 곧 툼스가 가져올 공짜 빵을 얻어먹으려고 스티브를 따라오고는 한다. 


"음, 당신 조카가 회의 내내 딴 생각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정말, 도움 안 되는 부연설명을 덧붙이려고도. 버키가 피터를 보며 씨익 웃는 동안 메이가 피터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어머?"


피터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말에 메이의 찌푸려졌던 눈썹은 다시 펴지고 입술 역시 양 끝이 올라가며 미소를 짓는다.


"좀 더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다시 말해보는 게 어때?"

"그래, 리즈가 다시 돌아온 것 같잖아!"


피터가 네드에게 조용히 하라는 필사적인 제스쳐를 취할 수 있기도 전에 네드가 뱉어버린 말에 메이의 두 눈이 반짝거린다. 이 주제가 아닌 주제로, 정말 말 그대로 그 어떤 주제든 간에 이 주제만 아닌 주제로 얘기하던 중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일인데.


"어떤 남자니, 피터?"


다섯 쌍의 눈이 모두 피터에게로 향했다. 다들 피터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음, 피터는 누구에게도 이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뭐, 당연한 이유들이 즐비해 있으니까. 


피터를 구원해준 것은 툼스가 입장하며 큰 소리로 하는 말들과 더불어 메이가 새로 고용한 바리스타가 아직 툼스의 독선적인 연설을 멈추는 법을 마스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망할 돈 때문에 신념을 다 버릴 놈으로 보여?"


툼스가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로 The Hybrid Puppy의 '신메뉴 어드벤처' 바구니에 새로 개발한 레시피의 빵들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툼스는 이 실험작들을 원가의 반값으로 팔고는 했는데, 대신 맛 본 사람들은 네드가 만든 설문을 채워야하고—

그리고 피터는 방금 툼스가 한 말의 반을 놓쳤다.


"—절대 안 한다고, 거기 부엌이 얼마나 완벽한 지는 상관 없다니까. 야, 파커."


툼스가 컵케이크가 든 쟁반을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컵케이크는 다 초록색이었다.


"네 슈가대디한테 내 사업 가지고 장난 치지 말라 그래, 알겠냐?"


순간 피터의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다.


"스타크 말야."


툼스는 도움이 안 되게도 덧붙인 뒤 드디어 설명에 들어간다.


"그 재수없는 새끼가 지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더군. 딱딱한 회의에서 먹을 머핀이나 구워달라고, 그 망할 기업 놈들이 충분히 살찐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보지. 지옥에나 가라고 했지. 내가 볼 땐 그 새끼는 오븐 다룰 줄도—"

"그냥 로봇한테 구우라고 시키실 걸요."


네드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 분 커피머신도, 버튼이—"

"하나밖에 없고 네가 디자인하는 걸 도와줬지, 그래, 알아들었어, 도시 전체가 알아들었을 거다, 리즈 (Leeds)*." 

"잠깐."


툼스가 낮게 투덜댄 말에 버키가 입 안 가득 초록색 컵케이크가 든 채로 말했다. 그 행동에 약혼자가 눈치 주며 쳐다보자 꿀꺽 삼키는 시늉을 크게 하며 컵케이크를 넘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냥 지금 하는 거에서 몇 시간 더 근무하는데 돈도 잘 받고 뭐 업그레이드나 그런 거 하는데에 보조금 더 받는 수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그게 어떻게 '신념을 버리는' 거예요?"


버키는 허공에 큰따옴표 표시를 하는데, 컵케이크의 반이 들려있는 손으로 꽤 어려웠을 일이었는데도 잘 해낸다.


"가게는 그대로고 돈만 좀 더 받는 거잖아요."

"입에 쑤셔넣지 좀 말지, 반즈, 동굴에서 자랐냐? 그리고 원칙에 따르는 거지—난 스타크의 더러운 돈 안 받는다고. Uber에서 대거 해고된 일 못 들었나 보지?"


피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운전자 없는 Uber 자동차를 원하고 따라서 그저 수요와 공급의 결과라고 말할 뻔 했지만, MJ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혀를 깨물며 자제했다.


"나라의 수치지, 빌어먹을. 언젠가 이 나라 전체가 스타크의 기술로 돌아갈 거고 힘 없는 사람은 그냥 스타크의 오천 달러짜리 신발 밑에 깔리는 개미만한 벌레나 되고 말거다. 자, 파커, 이제 내 승합차에서 어제의 선반 좀 가져와봐."


피터는 자리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툼스가 '슈가대디'라고 한 시점부터 스티브가 피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는데, 그 탐색하는 시선을 피할 수 있다면 툼스의 음모론을 들으며 The Hybrid Puppy의 뒷쪽에서 물건들을 가져오는 것마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고 봐라, 그 새끼 분명 꿍꿍이가 더 있으니까. 처음엔 교통이고, 그 다음엔 네 카페나 내 빵집같은 개인 사업이고, 곧 스타크가 뭐든지 컨트롤할 수 있게 될 걸. 비밀이나 사생활 따위는 없어지는 거지."

"더 안전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피터가 감히 말하자 툼스는 들고 있던 빵 상자 더미가 올려져있던 선반을 다시 금속성의 테이블 위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뜨렸다.


"똑똑한 앤 줄 알았더니. 아니면 이미 홀딱 넘어가서 그 윤이 나는 광고들이 하는 말들을 그대로 믿는 거냐? 미안하지만, 아무리 장미향이 난다 할지라도 똥은 여전히 똥이거든."


툼스는 그 말과 함께 상자들을 들고 자신이 승합차를 주차한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피터는 허겁지겁 따라붙었지만 툼스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차를 몰고 나가버렸다.


피터는 한숨을 쉬며 직원 전용 입구로 어벤져스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도로 향했다. 하지만 엘레베이터를 지나치고 코너를 돌자, 피터는 벽 하나와 충돌한다.


아니, 벽보다 더 운 나쁘게도— 스티브와 충돌한다.


"스타크 맞지?"


스티브가 서두 없이 말했다. 

피터의 속은 순간 놀라 울렁이지만, 그는 무슨 소리하는 지 모르겠다는 듯이 "누구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스티브가 2년 간 경찰이었고, 그 전엔 군인이었기 때문에 피터의 연기를 한 순간도 믿지 않는다는 것.


"네가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는 사람."


피터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스티브는 그 단단한 팔로 팔짱을 끼는데— 젠장, 피터의 표정이 이미 다 말해준 것 같았다. 피터는 주위를 둘러보다 정말 단 둘만 있다는 게 확실해지자 다급하게 속삭였다.


"우리 아무것도 안 했어요!"


스티브는 잠시 피터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것도?"


피터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이제, 저 가도...?"


스티브가 막아 선 카페로 향하는 문을 가리키며 말해보지만 스티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피터."


젠장. 피터가 아주 잘 아는 톤이었다. 메이가 자주 하지 않는 잔소리를 하려고 들 때 쓰는 톤이니까. 피터는 마지못해 스티브의 푸른 두 눈과 눈을 마주쳤다.


"그 상태로 두는 게 좋아. 넌 열 여섯 살이야, 피터. 그 사람은 마흔 일곱 살이고. 무려 서른 한 살 차이잖아."


스티브는 이미 피터가 수없이 많이 해 본 계산을 언급하며 말했다. 피터가 주로 늦은 밤, 오르가즘의 여운을 느끼며 이 모든 제한이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를 고민하며 하는 계산을. 그 고민 끝에 매번 나오는 결론은 피터가 지금 스티브의 말에 하는 대답이기도 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그 말에 스티브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나이는 현실 세계에서 중요한 기준이지, 어른들의 세계에서. 넌 동의하기에 너무 어리고—"

"아니 저는—"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피터. 넌 그저 스타크의 침대 속의 누군가가 되기에는 너무 소중한 애야. 그 사람은 플레이보이잖아, 피터. 토니 스타크같은 남자에게는 넌 그저 반짝거리는 '새거'일 뿐이고, 그는 질리면 바로 널 버리고 다른 매력적인 어린 남자애랑 놀아날 거야. 너 혼자 상처 받은 채로 그걸 다 감당해야 할 거고. 제발 네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이용되게 두지 마."

"하지만, 그, 그 분도 안정적인 관계 몇 번 가지셨잖아요? 페퍼 포츠 씨랑도 사귀셨고..."


피터는 말을 더듬으며 머릿속으로 스스로를 욕했다. 도움 안 되는 말은 하지 말라고.


"그래, 그것도 오래 가지도 못 했잖아? 심지어 나이대도 더 비슷한 사람이었고."


스티브가 단호하게 집어낸 뒤 말을 이었다.


"스타크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아무도 그에게 일보다 먼저일 수 없고, 피터, 너도 예외는 아니야. 그걸 더 빨리 깨닫고 스스로 안전하게 보호할 수록 네게 좋은 일이라고."


피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저번에 직접 토니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일에 집중하는지, 일이 터졌다는 순간의 알림에도 단숨에 모든 걸 떨쳐내고 업스테이트 지사로 향할 정도로 얼마나 회사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지를 봤으니까... 스티브가 하는 말에 일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반면 완벽하게 맞는 말은 아닌 것도 같고. 스티브는 토니가 어떤 식으로 피터에게 웃어줬는지를 보지 못 했고, '윤활유 대전'이 끝나고 얼마나 쾌활하고 근심 없는 목소리로 웃었는지를 듣지 못 했으니까. 


"이해하지?"


아, 스티브는 아직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아마?"


그 정도로만 해도 일단은 안심이 됐는지,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피터의 어깨에 친형같은 든든한 손을 얹는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으면 된다는 거 알지? 난, 뭐. 그런 식의 짝사랑은... 성장의 과정이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


피터는 속으로 위험 요소를 계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기는 했는데. 집에서 하자니 메이가 따지고 보면 집 안 가전제품을 관리하는 걸 책임 지고 있으니까 너무 위험해서...


"그, 혹시... 음, 혹시 근처에 세탁소 어디 있는지 아세요?"


피터는 값 싼 해결책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할 말을 잃은 스티브 로저스'라는 진풍경까지 보게 된다.




*




그래도 피터는 하루종일 집중하지 못 했다. 계속 그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서, 카페를 닫을 때쯤에는 '동의'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문에 피터는 토니가 구조물 문제를 해결하고 윗층의 배선 작업을 시작하려 카페에 올 때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순전히 스티브의 그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는 이유 때문에.


그 말들 때문에 피터는 토니의 입에서 나오는 음절 하나하나를 모두 의심하게 되어서, 그가 드디어 도착했을 때 말한 "안녕, 피터"라는 서두부터—"너무 늦었지, 알고 있어,"라는 말을 거쳐—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한 멍청한 랩 기술자가 잠깐의 부주의로 일으킬 뻔한 재앙에 대한 설명까지, 그 무엇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해피가, '죄송해요, boss, 근데 그 사람 뱃지를 안 차고 있었단 말이에요'라고— 너 안 듣고 있네, 어떻게 안 듣고 있을 수 있지? 너 브루스 얘기 좋아하잖아!"


피터가 휴게실로 향할 문의 회반죽을 기계적으로 떼어내다 말고 눈을 깜빡였다. 토니는 도어 프레임의 반대쪽에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위에 입은 티셔츠는 언제 벗으셨지?—작업 때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서 있었다. 피터는 토니의 드러난 이두근에서 직접 먼지를 털어주고 싶고, 민소매 티 위로 보이는 쇄골에 손을 스치고 싶—


"정말, 오늘 왜 이래? 오늘 작업처럼 대놓고 뭔가 파괴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딨다고, 밀레니얼 세대는 그런 거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지난 달엔 또 뭘 파괴했어? 여행사 몇 개? 와, 진짜 안 웃네. 방금 껀 좀 웃어줄 만 했던 것 같은데, 최소한 조소는 받을 만한 농담 아니었나?"


피터는 그냥 웃으려고, 다 괜찮은 척 하려고, 자신의 피부가 토니를 향한 열망— 정말 그 단어로도 한참 부족하지만—으로 얼마나 타오르고 있는지를 모두 숨기려고 하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왜, 어, 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토니는 피터를 쳐다보다 벽으로 시선을 돌린 뒤 다시 피터를 쳐다본다.


"왜냐하면 아직 벽을 뜯어내지 않고서 벽 너머의 배선을 교체하는 법을 발명하지 못 했으니까. 물론 언젠가는 할 거야, kid, 의심의 여지가 없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 정도로 만족해, 그냥 입 닥치고 있어, 라고 피터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지만 한 번 결심한 이상 여기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아뇨, 제 말은, 음.... 이거요. 왜 저를, 아니, 왜 저희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토니의 얼굴은 아주 잠깐 복잡해지지만 이내 다시 말끔해진다. 토니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글쎄, 우선 너는 똑똑한 애, 아니 남자고, 그 정도의 머리를 쉬게 둘 수는 없지. 그리고 너 정말 같이 있을 때 전혀 지루하지 않은 편이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 바로 그거고."


토니가 말을 끝내며 피터를 향해 웃어주자 피터의 심장은 터져나갈 것 같이 뛰었다.

토니가 곧바로 눈을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뭐, 알잖아, 리모델링은 즐거우니까."


피터의 뱃속은 다시 울렁이고 그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지만 토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 자의적으로 할 때 즐겁지, 무슨, 어떤 미친 AI가 타워를 통째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해서 반강제로 하는 게 아니면..."

"...즐거우시다고요."


토니가 피터를 향해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좁혔다. 피터는 목을 가다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말했다.


"우리 더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토니가 다시 거절하려는 게 보여 피터는 자신이 먼저 선수 쳐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말하지 않는다면, 정말, 젠장,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으니까.


"아니에요, 들어주세요. 저 정말 많이 생각해봤고 '동의'에 대해 많이 읽어봤는데— 아니, 따지고 보면 핸드폰으로 구글해본 거지만, 어... 제 말은, 우리 사이 균형이 맞을 날이 올 리가 없잖아요? 토니는... 뭐, 토니고, 저는 그냥... 그래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 알고 결정하는 거라고요, 토니도 말했잖아요, 저 똑똑한 남자라고."


말을 끝마친 후 피터는 자신이 말하면서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서서 도어 프레임 앞에 서 있게 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토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피터는 몇 마디 더 하기로 한다.


"그리고 전 똑똑해서 토니가 절 원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토니를 원하고, 우리 둘 다 똑똑하니까 걸리지 않게 잘 할 수 있잖아요. 아, 그리고,"


피터는 큰 제스쳐로 방 전체를 둘러보며 가리켰다. 너무 긴장해서 이 제스쳐가 어색한지 걱정할 겨를도 없었다.


"자비스도 있잖아요! 자비스는 절 좋아하시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토니가 말만 한다면, 토니를 위해 우리가 걸리지 않게 잘 보호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맞죠?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왜, 우리 그냥 하면 안돼요?"


토니는 피터의 인생에서 가장 길다고 느껴지는 순간동안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피터는 그가 다시 안 된다고 말할까봐 걱정하지만, 나오는 말은...


"우리 조심할 거야."


마침표로 끝났지만 질문에 더 가까운 말이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게... 그 이상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할 거고. 그냥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는 거야, 두 명의 동의하는 성—사람들로서."


토니가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바로 고쳐 말했다.


"심플하게만 내버려 둘 거야. 벨트 밑으로는 손만 내려갈 수 있는 정도의 심플함."


피터는 끄덕이던 고개를 멈췄다.


"하지만 (But)—"

"엉덩이 (butt)는 안 된다니까, kid,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인데."


그 말장난이 의미하는 바가 피터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몇 초가 걸리기는 하지만, 제대로 전달이 되자 그 속에 담겨있는 긍정에 피터는 무의식적으로 큰 소리로 숨을 들이키며 웃었다.


"그럼— 그럼, 우리...?"


토니가 숨을 들이쉬자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그는 마치 이 순간의 무게가 퍼져나가는 게 느껴진다는 듯 숨을 천천히 내쉰다. 피터도 느끼고 있었다. 토니는 천천히 피터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고, 그 뒤에 또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비어 있는 도어 프레임 앞에 서 있는 피터와 고작 몇 인치만이 차이 날 때까지 서서히 다가왔다. 


피터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머릿속도 텅 비어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드는 생각은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젠장, 이제 다 왔는데, 그리고 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이번에 입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건, 그 발자국을 내딛는 건 피터고, 토니가 기다려왔던 것도 그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터의 그 동작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순식간에 피터의 골반과 등허리에는 손들이 얹어지고, 피터가 내내 꿈과 판타지 속에서 느껴왔던 입술은 제 입술 위로 포개져 오고, 건축 중이던 카페의 먼지로 눅눅한 공기에는 토니의 오드 드 콜로뉴의 향이 섞인다.


피터의 등은 낡은 도어 프레임에 닿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토니는 피터의 몸을 제 몸으로 누르며 그를 도어 프레임과 자신 사이에 가두듯 고정시킨다. 

물론 지금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피터는 전혀 도망 칠 생각이 없지만.


피터의 골반이 제 의지와 상관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피터는 키스를 퍼붓는 토니의 입술이 웃고 있는 것을 제 입술에 닿는 감촉으로 느낀다. 심장이 뛰다 못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피터는 양쪽 손을 토니의 이두근에 올리며 피부 밑에서 그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그 근육의 힘을 느끼며 뭔가 더 바라는데—


토니가 몸을 뒤로 빼자 피터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술을 따라가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지만, 토니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그를 막았다. 피터는 곧바로 그 손에 가슴을 누르며 상체를 앞으로 내밀려 하지만 토니가 훨씬 힘이 세서 역부족이었다. 이 와중에 토니가 훨씬 힘이 세다니, 세상에, 그 사실만으로 피터의 머릿속에 드는 상상들이란.


"경주하는 게 아니잖아, kid."


토니가 놀리듯 말했다.


"지금 이 세상의 시간은 다 우리 꺼야."


그 말에 피터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부끄러운 소리를 내지만, 다행히 토니는 웃으며 피터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키스하며 내려온다. 너무 여유 있어서 방금 말이 수사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세상의 시간을 다 가졌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천천히. 순간 토니가 피터의 티셔츠의 아랫단 밑으로 손을 넣고 그의 골반과 베랫나루 사이를 만지기 시작해 피터가 숨을 가파르게 들이마셨다. 토니의 손이 뭔가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느리게 원을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토니가 피터의 목에 하고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애무에 더해지자 그 감각이 피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토니가 다시 피터에게 키스할 때쯤 피터는 미칠 것 같은 감각에 온 몸을 덜덜 떨며 토니의 수염이 까슬하게 피부에 닿아올 때마다 숨을 멈추고 있었다. 피터는 입술이 맞물린 새로 신음하며 토니의 어깨를 손으로 훑었다. 지금 손톱을 조심해야 할지 말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어차피 지금 피터에게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토니의 단단히 일어선 성기가 배를 찔러올 땐 더욱 그랬고, 토니의 허벅지가 피터의 다리 사이로 들어올 때는 더더욱 그랬다.


마치 지난번에 멈췄던 그 상태에서 바로 이어가는 느낌이어서, 피터의 머리는 과부하가 걸려 조금 힘겨워하지만 그의 몸은 더할 나위 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토니의 다리의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피터를 놀리는 것 같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신음에 토니는 웃기보다는 더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터가 칭얼대듯 하는, 또는 억눌렸지만 새어나오는 숨을 헐떡이듯 하는 신음이 커질 수록 토니는 페이스를 더 빨리 하고, 각도를 바꾸고, 쉽게 말해 거의 백만 가지 테크닉을 동시에 쓰면서 피터와의 키스를 이어나간다. 반면 피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토니의 이두근으로 손가락을 파고들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흥분감과 쾌감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피터를 가게 만드는 것은 그의 머리채를 아프지 않게 잡는 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쾌감이 파도치듯 밀려와 피터의 시야는 순간 새하얗게 물들고 그는 조금 몸을 떨며 사정한다. 토니는 오르가즘의 여운을 느끼는 피터를 안아주며 피터가 그 쾌락에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 동안 그에게 느리고 뜨겁게 키스했다. 


"죄송해요."


그게 이성을 되찾은 피터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무슨 소리야? 엄청난 칭찬인데."


토니가 예의 그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피터는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아직 내가 감을 잃지는 않은 것 같아서 좋네."

"아, 네, 정말, 방금 그거, 정말..."

"최고였어?"


토니가 피터의 말버릇을 따라하며 더 진한 미소로 제안해주자 피터는 스스로의 얼굴에 열이 홧홧하게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네..."


토니가 뒤로 물러서서 피터의 몸이 좀 더 자유로워지자 피터는 도어 프레임에서 몸을 떼어낼 수 있는데—얼마나 세게 눌려있었는지 떨어지면서도 조금 아팠지만— 어쩐지 뭔가 잊은 것 같은 기분이—


아. 피터의 눈은 토니의 여전히 단단히 서 있는 것으로 향한다. 토니는 피터의 시선을 눈치 채고 피터가 플래시가 또 건드려올 때마다 머릿속으로 반복재생하는 그 진정성 있고 솔직한 웃음을 터뜨린다.


"얼굴 볼 만 하네. 걱정하지마. 말했다시피, 세상의 시간이 다 우리 꺼라니까."

"하지만 토니도, 음,"


피터가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아니면 제가 한 번—"

"젠장, kid, 너 그 문장 끝내면 오늘 자정 전에는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은데."


피터는 눈을 깜빡였다.


"그게 저한테 손해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게 까불자 (뭐, 반쯤은 까분 거고 반쯤은 진심이었지만) 토니는 장난스레 피터의 어깨를 밀치며 다시 웃는다. 내일 학교 가야하는 날만 아니었어도 피터는 뭔가 더 해봤겠지만,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 지도 잘 모르겠어서— 유혹은 대체 어떻게 하는거지? 아니면, 뭐, 다른 거라거나— 오늘은 이쯤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바지가 다리 사이로 좀 기분 나쁠 정도로 달라붙고 있기도 해서.


토니는 피터에게 차를 한 대 불러주고, 둘은 차가 도착할 때까지 언제 만나서 다시 리모델링 작업을 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차가 도착해서도 피터는 곧바로 직원 전용 출입구로 나서는 대신 다시 토니 쪽으로 다가선 뒤 도둑 키스처럼 서둘러 입을 한 번 맞췄다.


이제는 해도 되니까.


처음엔 토니의 입술을 놓쳐서 좀 어색하고 창피해질 뻔 하지만, 곧 이어지는 입맞춤은 정말 핫하고 완벽하고 최고고, 그리고, 그리고... 피터는 형용사를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키스는 한참 이어지지만 결국 토니는 피터에게서 떨어지며 문을 열어준다.


"이제 정말 가야될 것 같아. 차 너무 오래 내버려두면 걔 짜증 나서 노란 불에도 선단 말이야."


피터는 좁은 골목으로 발을 헛디디며 나왔다. 제일 가까운 CCTV는 적어도 5미터는 떨어진 전봇대 위에 달려 있었다.


"무슨 뜻— 잠깐만요, 설마 차에 지각력이 있어요? 그거 정말 최고잖아요!"


토니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낮게 웃었다. 그는 이미 두번째 차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차를 타기 직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피터를 보며 다시 웃어주기도 했다.


피터의 심장은 말 그대로 몇 박자를 더 빨리 뛴다.















*여기서 '리즈'는 툼스의 딸 Liz Toomes의 이름이 아니고 Ned Leeds의 성 'Leeds'입니다. 



- '할 말을 잃은 스티브 로저스'라는 진풍경 너무 귀엽고 좋죠 ᐕ

- 우리 그냥 하면 안돼요? 하는 피터 너무 사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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