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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신분증을 제시해주세요 2

토니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는데 처음부터 들킬 위기에 처해지는 피터의 이야기

와아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빈 골목을 울렸다. 메두사와 눈이라도 마주친 듯 뻣뻣하게 굳어있던 피터는 아이가 신랄하게 우는 소리를 1분은 족히 들은 뒤에서야 화들짝 놀라 아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우는 모습이 그나마 토니의 얼굴과 괴리감 있어보여서 피터는 그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아이를 달래려 목을 받쳐 안은 채 등을 쓰다듬어 봤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늘마저 찢어질 것만 같은 그 울음소리에 피터는 서서히 이 도시가 대체 어딘지는 몰라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깨면, 이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올 테고, 피터가 아이를 들고 있는 걸 본다면...이 아이의 얼굴을 본다면. 아니, 무슨 상황이든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피터가 다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누가 봐도... 


  피터가 일단 날이 추우니 입고 있는 후드집업을 벗어 포대기처럼 아이를 감싸들고 아이를 달래려 상체를 조금씩 들썩이며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이 켜진 곳은 가게는 하나도 보이지 않음에 좌절하면서도 본인이 큰 소리를 내면 아이가 놀라 더 크게 울 것 같아 그마저도 조용하게 속으로만 좌절했다. 집에 두고 온 캐런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생각이 들자 피터는 고개를 휙휙 젓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아냐, 피터 파커, 수트가 없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면 수트를 가져서는 안 되잖아. 이 와중에도 머릿속을 다스리는 게 토니와 그 망할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자 피터는 더더욱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왜, 왜 하필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 직접 낳은 애 얼굴에서부터 머릿속까지 끼지 않는 데가 없어, 장악해놓지 않는 데가 없어. 망할 아이언맨.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잔뜩 구겨졌던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초인적인 감각으로 희미하게 비쳐오는 상당한 규모의 편의점의 불빛 하나를 잡아내기는 했으니까. 피터는 더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를 껴안은 채로 조심조심 그곳으로 경보하듯 빨리 걸었다. 다행히 건물들 사이에 가려져서 불빛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일 뿐, 편의점 자체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편의점의 불빛과 달리 피터가 데리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전혀 희미하지 않았던 것인지, 피터가 백 미터 정도 떨어져있던 시점부터 이미 카운터에 앉아있던 직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리문 너머의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피터가 편의점의 문을 열며 말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은 듯 했다. 편의점 카운터 너머로 서있는 몸집 좋은 남자가 양 손으로 귀를 막으며 그들 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피터는 문을 닫고 있던 손에서 시선을 떼고 남자를 마주한 순간 단단히 얼어붙었다. 저 날이 선 눈빛은 아주 분명히 낯선 동시에 매우 위협적이었다.


  순간 피터는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날뛰며 장거리 이동에 피로로 찌든 근육들을 하나하나 깨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파이디 센스가 약하게나마 울리고 있는 걸로 봐서 확실히 이건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다. 본인과 아이가 모두 위험에 처해있지 않았다면 울리지 않을 본능이었다. 피터가 입술을 깨물며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이를 더 꽉 껴안았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서 잘 싸울 자신은 없지만, 만약 남자가 공격해온다면... 


  "압타밀은 두번째 줄에 있어."

  "...네?"


  피터가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다. 남자는 여전히 귀를 막은 채고 인상도 찌푸려져 있었지만 막상 입을 여니 말투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압타밀 말야. 분유 파우더. 배고픈 것 같은데 물이랑 섞여서 먹여야 해. 물은 끓여야되고."

  "...그... 아, 네! 아, 네, 네네! 압타밀, 분유 파우더, 물. 네, 감사합니다!"


  방금까지 '언젠가 명치 위치를 배웠던 것 같은데 어디였지, 힘 조절 할 수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피터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끄덕이며 두번째 선반으로 향했다. 그냥 시끄러워서 인상 쓰셨던 거구나, 난 또... 스파이더 센스가 울려서 확실한 줄 알았는데. 근데 스파이더 센스 오작동이라니 그런 건 경험한 적도... 거기까지만 생각했을 뿐인데, 자신의 향상된 감각을 상기하자마자 그 감각으로 더욱 크게 닿아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정말 시끄러워서 피터가 '압타밀'이라고 쓰여있는 파란 상자를 부리나케 찾아와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런 피터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기 먹일 거 준비해봤어?"

  "...네? 저,"

  "해봤을 리가 없지, 15살짜리처럼 생겼는데. 조리기구 소독부터 해야되니까 기다려, 컵은 일단 포장 안 뜯어놓은 것도 팔고 있으니까 그거 쓰고..."

  

  피터는 본능적으로 18살이거든요! 라고 대꾸하려다 딱히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닐 것 같아서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 후 10분여의 시간동안, 피터는 꽤 전문적인 손길로 이것저것 준비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을 고마움으로 거의 울망울망해지다시피 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가 하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꽤 규모가 큰 편의점이라서 젖병이고 컵이고 모두 팔고 있는 것을 대충 바코드만 찍어서 풀어내고 끓여서 소독해 아이의 입에 첫 분유를 물려주고 나니 아이는 딱 그걸 원했다는 듯 난생 처음으로 잠잠해지며 젖병을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피터가 한 손으로는 아이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젖병을 물려주다 멈칫했다. 아이가 내내 찡그리고 있던 눈을 떠서 밤색 눈동자를 깜빡이니 다시 실감이 났던 것이다. 누군가를 매우 많이 닮은 그 눈동자를 보며.


  토니 스타크의 아이다. 

  들키면 안 된다.


  피터가 뿌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아이의 얼굴을 슬쩍 가리며 주의를 돌리려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sir."

  "Sir은 무슨, 아저씨도 아니고. 그냥 에단이라고 불러. 너는?"

  "...아, 음. 제 이름은 네드예요."


  네드 미안, 나 도망치고 있잖아. 이해해줘. 피터가 속으로 작게 사죄했다.


  "그래, 네드. 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새벽 4시에 신생아처럼 보이는 아기를 안고 들어온거야? 솔직히 네가 안고 있는 아기 소리가 얼마나 우렁차던지 꽤 오랫동안 들렸거든. 부모는 뭐하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학생처럼 보이는 애가 나 혼자 있는 편의점으로 쳐들어올 줄은 몰랐지."

  "아, 그, 제가 낳은 애는 아니에요."


  ...너무 빨리 말했나? 에단이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을 본 피터가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히 네가 낳은 애는 아니겠지, 목소리는 여자애같아도 너 남잔 거 훤히 보이거든. 사고 쳤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사고였나? 고작 사고나 피임 실패의 결과물이라고 하기는 싫은데.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고라고 부르는 건 정말 싫은데, 사실 애초에 그래서 도망 친 건데, 이 아이가 고작 사고가 되는 게 싫어서... 아이가 다 마신 듯해 피터가 젖병을 떼고 아이를 고쳐안았다. 트림할 수 있게 고쳐안으라고 지시해준 에단의 말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게 자세를 고친 뒤에 등을 토닥이는 피터는 생각보다 말이 꽤 많은 에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스스로도 본인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터져나오기 일보 직전의 상태같다고 느꼈다.


  "뭐, 내가 뭐라고 할 바는 아니지. 나도 사실 어렸을 때 전여친이랑 일이 있어서... 둘 다 멍청이같았지. 내가 애 키우는 걸 안 것도 다... 근데 너는, 애 엄마는 어딨어? 너 그래도 고등학생이긴 한거지? 애 엄마 혹시 네 여친이야? 너 설마 방금 애 낳고 쉬고 있는 여친 몰래 애 빼왔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게 제가 직접 낳은 앤데요. 네, 남자가 애를 낳다니, 식겁하셨죠? 근데 더 신기한 거 알려드릴까요? 얘 알에서 태어났어요. 잠깐, 이게 다가 아니에요! 얘가 바로 아주 잘 알고 계시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아들이에요! 네! 아, 보너스로 또 알려드리자면 저는 스파이더맨이고요! 아주 잭팟이죠! 당첨됐을 때 돈이 아니라 불운이 쏟아지는 잭팟에 걸린 제가 바로 피터 벤자민 파커입니다!


  피터가 머릿속으로 차오르는 말들을 모두 무시하고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웃었다. 아이는 칭얼거리지도 않고 얌전히 품 속에 기대어 있었지만 여전히 트림은 하지 않았다. 피터는 한켠으로는 기저귀 생각으로 복잡한 뇌를 최대한 빨리 굴리며 좀 그럴 듯한 변명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그, 음, 저, 제 여자친구가 출산을 방금 했는데.... 어.... 곧바로, 저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그런데 수술비를 내고 아기까지 병원에 맡길 돈이 없어서 수술비랑 입원비에만 주력을 하다보니 저랑 애는 갈 데가 없어서 곧바로 나와버렸...?"


  아니, 이거 굉장히 비극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잖아? 피터는 안 그래도 시궁창인 본인의 처지보다도 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스스로도 아연해 얼굴이 질려버렸다. 하지만 듣고 있던 에단은 피터의 그런 얼굴이 스스로도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놀라서 지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못된 사촌에게 괴롭힘 당하는 11살짜리 마법사를 보는 마법사 학교의 사냥터지기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조용히 열었다.


  "...네드, 괜찮다면 내 집에라도 있을래? 하루라도? 나도 애가 하나 있긴 한데 걘 지금 지 엄마 집에 가있으니까 괜찮을 걸. 난 오전 5시에 근무 끝나니까 너도 그때쯤 한숨 자두면 괜찮잖아?"


  피터가 예상치 못한 친절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 반쯤은 작동을 정지한 뇌에서는 되도 않는 동문서답이 나왔다.


  "...혹시 여기 어디죠?"

  "응? 여기? 브루클라인?"


  오래 오긴 오래 왔구나, 보스턴이네. 피터가 이미 하루종일 혹사시킨 입술을 다시 잘근잘근 짓눌렀다. 이성적인 것은 토니로부터, 어벤져스로부터, 토니가 있는 곳에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한시가 아까웠다. 하지만... 피터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봐오는 에단의 밤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하필 저 눈동자는 피터가 아는 한 남자를 너무 닮아서 믿지 않고는 못 배길 눈이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에단. 정말 고마워요."


  하루. 하룬데 별 일이야 있겠어. 

  드디어 아이가 트림 소리를 내, 피터가 거의 12시간만에 처음으로 편안히 웃었다.












  1년에는 365일이 있다. 그 365일은 8760시간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가 한창 잠을 못 자고 미친놈처럼 아이언맨 수트나 만들어댈 때에 그는 딱 그 정도의 정신머리로 아인슈타인은 그 8760시간 중 3시간만을 잠 자는 데에 허비했다는 개소리도 지껄이고는 했었다. 토니 스타크는 무려 그런 사람이었고, 휴식보다는 효율을, 잠보다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남자였는데. 왜. 하필 왜. 


  대체 왜 하필 오늘을 골라 이렇게 푹 자버린 걸까. 


  [Boss.]

  [Boss, 확인하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Boss!]

  

  프라이데이의 답지 않게 다급한 음성에 토니가 닫혀있던 눈을 번쩍 떴다. 여전히 뻐근한 몸뚱아리에 그가 끄응, 소리를 내며 누워있던 몸을 돌려 팔꿈치로 상체만 지탱해 든 뒤에 다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더 자고 싶은 마음과 땅덩어리 하나가 곤두박칠 때마저도 차분한 목소리로 소코비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해주던 침착한 음성이 놀랄 일이 대체 뭐가 있나 싶은 마음이 찰나에 충돌했지만, 사실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토니 스타크는 잠보다는 생산성이 먼저인 남자니까. 


  "왜 이래?"

  [메이 파커와 연결하겠습니다.]


  메이 파커. 토니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파커'라는 성만 들어도 마음이 짐을 진 것처럼 무거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그, 언제였더라.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나? 망할 놈의 워커홀릭 본능같으니라고, 일만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흐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때 그 애가 저질렀던 일이 쉽사리 용서가 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놀라기만 했다. 아니, 놀랐다는 말은 그 애가 여객선을 두 동강 낼 뻔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르는 말이겠지. 그래도 그때는 마구 뛰었던 심장이 멀쩡한 얼굴을 봤을 때 화로 바뀌어서 결론적으로 잠재우기 더 쉬워지기는 했으니. 코니 아일랜드에서 그 빌런의 수트의 발톱과도 같은 부분에 가슴을 관통 당했다는 말을 듣고도 놀랐던 것 같다. 그 때는 피터의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보지도 않았었고, 그 어리기만 한 것에게 마음을 주지도 않았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번이었다. 그렇게 큰 임무라고 생각되지도 않던 일인 탓에, 출장을 가는 길에 자신이 이제 빌런을 쓰러뜨리러 간다는 씩씩한 문자를 받고서도 별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서 잘해보라고 한 마디만 딱 보내고 났던 그때. 

 

  피터를 다시 봤을 때, 그 애는 그 작은 몸에 자리가 어딨다고 수혈팩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었다. 메타휴먼이라서 일반인들이 받는 정도의 수혈로는 치료도 안 될 자식이 그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제서야 토니는 '놀랐다'고 할 수 있었다. 놀랐다는 말의 정의가 언제 '심장이 발 밑으로 떨어질 듯 곤두박질 쳐 숨을 쉬기조차 곤란해지는 상태'로 바뀐지는 모르겠지만. 토니는 그때 진심으로 언제 중력의 가속도를 나 모르는 새에 9.8m/s^2보다 더 올려버렸냐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멀쩡히 흉부에 위치해있던 심장이 갑자기 떨어질 리가 없다고 신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덤으로 꼭 일이 생기고 나서야 애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자신의 멱살도.


  그때 분명 책임감에 대해서는 똑똑히 일러줬던 것 같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은 '네 몸을 간수 잘 해라, 웬만해서는 티끌 하나도 다치지 않게'였지만 본인 말마따나 책임감 때문에 히어로짓을 계속하고 있다던 피터가 들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그 말 한 사람치고는 책임감 없어보이는 것도 사실이어서 일단은 그렇게 해뒀다. 그런데 피터는 그때도,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결코 말을 듣지 않았다. 둘이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던 그 날조차도 '언제까지 해야 만족할래. 죽을 때까지 몸 안 사리고 이럴 예정이야? 어디 가둬놓지 않는 이상은 관둘 마음도 없어보이는데 자택 감금이라도 해줘?'하고 윽박지르고 싶은 걸 18살이라는 걸 감안해서 몇 번이나 거르고 걸러서 적당히 해뒀는데.


  토니가 짧은 시간동안 많은 회상을 하고 있을 동안 메이가 전화를 받았다. 신호음이 두 번 정도만 갔을 시점이었다.


  "토니!"


  그래, 그 순간부터 이미 토니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토니, 피터가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 직감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인지 영역에서 한참 밖이었다. 그 찰나 토니는 '사라졌다'는 말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사라졌다니?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나?


  "뭐라고요?"

  "사라졌다고요, 피터가!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쪽지 한 장만이 남아있었어요, 세상에— 그래서 토니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으시길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토니의 심장이 예의 그 콱 떨어지는 효과를 내더니 거세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라진다는 말의 단어가 다가오며 토니가 주먹을 꽉 쥐었다. 눈 앞에서 쓸 데 없이 선명한 피터의 잔상이 떠올랐지만 약올리듯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그러니까, 사라졌단 말이지. 그런데 어디로? 언제? 어떻게?


  대체 왜?


  "메이, 침착해요."


  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제일 침착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토니는 우선 메이를 진정시켰다.


  "쪽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걸 말해야— 아, 젠장, 뭐 어쩌겠어— '메이, 저 당분간 어디 가있어야 할 거 같아요. 스파이더맨 일이에요,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얘는 정말 저를 바보로 아는 건지, 방에 들어가보니 수트는 챙기지도 않았더만—"


  횡설수설하던 메이가 내뱉은 말에 토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싸웠다지만 피터의 수트 AI에게서 업데이트를 받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최근 패트롤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다면 알림이 왔을 테지만 지난밤, 잠에 들기 직전 확인한 바로는 피터는 아예 그날 패트롤을 나가기는 커녕 수트를 입지조차 않았었다. 젠장.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하고 넘겼던 과거의 자신의 안일함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게다가 일도 없었는데 스파이더맨 활동을 한다고 나가는 애가 수트는 챙기지도 않았다고? 그런데 메이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도... '스타크 씨한텐 말하지 마세요.'"


  메이는 피터가 하지 말아달라고 대놓고 부탁한 것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서린, 그러나 그보다는 걱정이 더 부각된 목소리로 말했다. 토니가 눈을 부릅 뜨고 관련도 없는 눈 앞의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스타크 씨한텐 말하지 마세요.


  피터는 활동을 하며 토니에게서 무언가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항상 더 말하고 싶어하고, 바쁘다는 사람을 쫓아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재잘댈 정도로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말이 더 맞았다. 그런 그 애가 유일하게 숨기고 싶어하는 것은, 열 다섯 때부터 몇 번이고 반복된 단 하나의 유구한 시나리오 속 뿐이었다. 


  본인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상황. 그 멍청이가. 토니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스파이더맨 수트를 챙겨가지 않은 것도 너무 말이 되어버린다. 보나마나 수트에 내장되어 있는 추적기로 위치추적을 당하는 걸 피하기 위해서겠지. 토니를 피하기 위해.


  "메이, 걱정 마세요. 지금 당장 찾아보죠. 제 힘뿐만이 아니라 필요한 단체란 단체는 다 끌어들일 테니까요."

  "아 세상에, 토니, 정말 고마워요, 정말, 제발 찾아줘요."

  "오늘 내로 꼭 찾을 테니 일단 진정하고 쉬고 계세요, 메이."


  메이의 전화는 토니를 믿는다는 듯 최대한 빨리 끊겼다. 그녀의 눈에는 지금 애인의 실종 소식에 돌아버리기 일 초 직전의 남자가 아니라 후배 히어로를 찾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재력과 권력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 능숙한 비즈니스맨이자 히어로가 보일 테니까. 토니가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프라이데이를 찾았다.


  "프라이데이."

  [Boss.]

  "지금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빠른 차, 아니 가장 빠른 헬기의 이륙 준비를 시작해. 내가 직접... 아니, 지금 당장 데려와야겠으니까 이륙장 근처에 있는 아무나 믿을 수 있는 놈으로 당장 타라고 시켜. 그동안 스파이더맨 관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놓은 피터 파커의 핸드폰을 정밀 추적해."


  바보 같았어, 피터. 네 핸드폰을 등록해놓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피터는 자발적으로 위치 추적을 당하기 위해 토니에게 핸드폰을 넘겨준 적도 없었고, 당연히 GPS를 켜놨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토니는 애초에 피터의 핸드폰에 스타크 인더스트리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되는 추적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스텔스 다운로드를 해놨기 때문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피터는 예나 지금이나 그걸 알면 사생활 침해라고 길길이 뛰었겠지만 토니에게는 주니어 히어로의 안위를 위해서라는, 완벽히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성립되는 명분도 있었다. 물론 토니가 명분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었고, 핸드폰 따위가 아니어도 등록되어있는 스파이더맨의 신체 정보로 시간만 더 오래 걸릴 뿐 어떻게든 찾아냈겠지만.

  컨트롤 프릭이라는 별명이 어디 가지는 않는군.  토니가 씁쓸하게 헛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자신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봐야하는 남자라는 걸 피터가 고쳐주려고 애를 쓸 때, 그 애는 이 통제 본능이 자신을 추적하는 데 쓰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물론 피터가 자신을 이렇게 대놓고 피할 거라고는 토니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길래. 

  이번에는 또 어떤 위험에 스스로를 아낌없이 던질 생각이길래.


  [ 피터 파커의 핸드폰이 300 Kent Street Apartment N, 02xxx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아밀리아 세라노가 탑승한 무인 파일럿 헬리콥터가 19초 후 이륙합니다. ]


  피터.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든지간에, 토니 스타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더 잘 했어야지.

  밀려드는 피로에 고개를 숙인 토니의 시야에 유리 테이블에 본인의 모습이 비쳐 들어왔다. 간밤에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충혈된 눈과 파리한 안색을 하고 있는 그 얼굴에서 두 눈만은 번뜩이고 있었다.

  


  




  

  




  아이는 잠이 없었다. 피터는 지난밤 한 숨도 자지 못해 몹시 피곤했지만, 에단이 지시하는 대로 아이에게 젖병을 몇 번 더 물려주고, 에단이 빌려준 아기 옷도 입혀주고,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기저귀 관련 일마저 모두 에단의 도움으로 해냈기 때문에 그에게 지난 밤 못 잔 잠을 더 이상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에단은 그 모든 걸 지시함으로서 도와주면서도, 피터가 에단이 아이 가까이 오는 걸 꺼려하는 티를 내자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일제히 멈추기도 했다. 또한 그 과보호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상한 행동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피터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아이의 얼굴을 에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지만. 그 복합적인 이유로 감사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피터가 에단에게 끝까지 제발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애걸복걸하자 그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피터와 아이를 거실에 남겨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피터는 드디어 따뜻한 집 안에서 소파에 앉아, 무언가에 쫓기는 감각 없이 아이를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가끔 울고, 잠깐 자고, 피터가 생각 없이 얼굴 쪽으로 손가락을 가까이 대면 빨려고 고개를 뒤척일 뿐인 아이를 쳐다보는 게 얼마나 중독적인 행위인지를 깨달았다. 어렸을 때 몇 번 텔레비전에서 스쳐지나간 드라마 방송에서 부모님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 때는 그 애가 그렇게 걱정되나 싶었는데, 피터는 새삼 그들의 과도할 정도로 집요한 시선이 걱정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아이에게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다만 피터는, 뭔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미소 짓고 쳐다보다가도, 아이가 커다랗고 선명한 눈동자를 들어 또렷히 눈을 마주쳐올 때는 숨을 쉬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토니의 아이라는 게 조금 덜 실감이 난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이가 기가 막히게도 딱 눈을 마주쳐와, 그 눈동자를 보면 정말 자신이 버리고 온 삶과 앞으로의 삶의 선명한 대비가 그려지는 것 같아서. 자연스레 토니의 생각이 따라오기도 했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제대로 잠도 못 자는 사람인데 자고 있기는 할까. 요즘 연락 안 되는 걸 보면 바빴던 것 같은데 일 하고 있는 건 아닐... 아, 연락이 안 되는 건 그냥 내가 꼴도 보기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취소. ...그럼 지금 내 생각은 안 하고 있겠지? 해도 걱정이고 안 해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그렇게 피터의 생각이 딴길로 새기를 반복하기를 몇 번, 아침은 벌써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귀를 찌르는 두두두두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피터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싶을 때쯤 아이가 울음을 빼액 터뜨렸고, 마침 타이밍 좋게 피터의 스파이디 센스 또한 요란하게 울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피터는 그것이 명백히 헬리콥터 한 대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브루클라인 상공에 헬리콥터라니. 단 한 가지를 뜻했다.


  토니가 자신을 찾았다.


  그 자각에 멍청하게 눈만 크게 뜨고 앉아있던 피터가 감전된 듯 갑자기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벌써? 토니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지 않은 한, 메이가 연락을 할 때까지 토니가 자신의 실종 사실조차 몰랐을 테니—그나저나 분명 말씀 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메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을 하기까지의 시간을 대충 계산해봐도 토니가 자신을 찾은 시간은 매우 빨랐다. 자신과 비슷한 신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아무리 프라이데이라도 이 정도 속도는 나오지 않을 텐데... 추적이라도 한 것 같은 속도였다. 


  어쨌건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피터가 일단 아이를 내려놓고 미친 듯이 압타밀과 기저귀를 비롯한 아기 용품을 배낭에 담았다. 빨리, 빨리, 어디로든 떠나야돼, 여기는 안 돼... 헬리콥터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 착륙하든가 사람이 옥상으로 내려올 테니 피터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기저귀, 여깄고, 아, 아기 옷도 몇 벌, 에단 미안해요, 난 지금— 젠장!


  피터가 허둥대다 핸드폰을 떨어뜨려 속으로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잔뜩 금이 갔던 핸드폰은 떨어지는 순간 액정이 블랙아웃되어서 회생할 수 없는 경지로 넘어간 것 같았다. 젠장, 젠장, 도망치는 데에 핸드폰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어차피 고장 난 핸드폰이라면 굳이 챙기는 게 미련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렸다. 정말 지금 당장 떠나야했다.


  "네드, 너 지금 어디—"


  드디어 소음에 못 이겨 방 안에서 나온 에단이 어리둥절해하는 소리를 뒤로 한 피터가 인사할 새도 없이 아이를 받쳐들은 채 에단의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는 피터의 예민한 귀에 몇 층 위에서 또다른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집중하며 피터가 더 빠른 속도로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드디어 에단의 층에 그 사람이 도착했는지 희미한 대화소리가 부분부분 끊겨 들려왔다.


  '여기... 피터 파커... 갈색 머리... 18살...'

  '그런 사람 못... 네드라는...'

  '하지만 핸드폰 위치 시그널이....잡힐 수...'

  '확인해도... 여기는....'


  에단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건지 헬리콥터 소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끝까지 도움이 되는 대답은 거부하는 소리를 들으며 피터가 아파트 현관문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그래도 여전히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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