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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13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13편에서 수위가 있는 부분만 잘린 글입니다.




"자세한 건 이메일로 보내주지."


웨딩에 나올 빵과 음료수에 대해 모든 결정이 끝난 뒤 툼스가 버키에게 하는 말이다. 툼스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피터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 어, 네, 저도요. 아니면, 그, 다음 어벤져스 회의 때 드리거나, 그렇게 할게요."


절대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수가 없는 피터가 말을 잔뜩 더듬자 버키가 미소를 지었다.


"친구 할인 해주는 거지? 우리 그 로봇 청소기도 결국 알아서 사야 되잖아."


피터는 입술을 깨물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피터를 보며 한 말이기는 하지만 툼스에게도 분명 해당되는 질문이었음에도 막상 툼스는 눈을 굴리기만 할 뿐 확답을 주지 않고 아랫층으로 향했다. 그 반응에 버키의 얼굴에는 한 순간 걱정이 스쳤지만 곧 핸드폰을 꺼낸 그가 다시 활짝 웃었다.


"벌써 '좋아요'가 73개! 알아서 사기는 무슨—이번 웨딩이 끝나면 나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인 돼서 그 돈으로 로봇 청소기 살 거야!"


배너 박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에서는 그게 가능하려면 네 팔로워가 훨씬 많아야 할 것 같은데."

"그쪽 현실 정말 최악이네. 잠깐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아, 맞다, 엄청 유명한 절친 한 분을 가지고 계셨지. 절대 내 웨딩에는 안 데려온다는 그 분."

"존댓말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데려오신다는'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피터가 버키의 말을 정정할 수 있기도 전에 브루스가 선수를 쳤다. 


"네, 네, 어쨌든! 스타크만 데려오면 내 부업에 엄청 도움이 될 거라니까!"

"토니를 이용해서 '좋아요'의 수를 늘리는 건 바람직한 사업 모델이 아닌 것 같은데요."


피터가 그렇게 집어내도 버키는 그저 손을 휘적휘적 흔들 뿐이라서, 피터는 대화에 더 참여하는 대신 테이블을 닦는 데에 매진하기로 했다. 꽤 빠른 속도로 그 층의 테이블을 모두 닦아낸 그는 곧 아랫층으로 향했다. 

메이와 찬드라가 작은 언쟁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타이밍 덕분이었다.


메이의 절친한 친구인 찬드라는 물려받은 옷만을 입고, 왼쪽 귀 뒤의 세미콜론 모양 타투가 훤히 드러나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을 한 볼륨감 있는 30대 여성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과 메이가 속해 있는 정신건강 테라피 모임과 함께 다같이 바에 갈 수 있도록 메이를 설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서, M-doll, 너 수요일 모임 때도 안 왔잖아! 이제 와서 또 우리 버리고 가기 없기야."

"못 간다니까."


메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터에게는 메이가 또 테라피 모임을 빠졌다는 것조차 눈치를 못 챈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조카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메이가 못 가는 이유가 사무실에 남아있는 산더미같은 서류 작업 때문이라는 것을 아니까 더더욱. 지난 몇 주간 메이는 피터가 작업실에 갈 수 있도록 스케줄을 비워주기 위해 카페의 회계 기록 관리를 다시 책임지기 시작했었다. 물론 요즘처럼 토니가 이 도시에 있지도 않을 때는 피터가 혼자 작업실에 가봐야 소용도 없지만 (어차피 자비스가 들여보내줄 것 같지도 않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확실히 진작 뭐라고 말을 했어야 했다. 메이가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는 게 그녀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지 뻔히 알면서도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 멍청이처럼 구느라 눈치도 못 챘다니. 피터는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고칠 수 있는 사안부터 손을 대기로 했다.


"서류 작업은 제가 할 수 있어요, 메이 숙모."


그 말에 메이의 인상은 조금 펴지지만, 대신 망설이는 표정이 드러난다.


"아니야, 피터, 토요일 밤이잖니."

"저 할 일도 없는걸요."


피터가 단번에 말했다.


"MJ는 시위하러 나갔고, 네드는 제가, 그, 아시잖아요, 작업실에 갈 거라고 생각해서 H-Net 친구들이랑 같이 레벨 5 깨기로 했다고 했고, 저, 제 다른 친구들도 다 바쁘댔어요." 


피터는 친구들을 나열하다가 다시 '유진'을 이 일로 끌여들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살짝 들었다.


"저는 괜찮아요, 좀 쉬셔야 하잖아요. 요즘 일 많이 하셨는데."

"너도 많이 했잖니."


그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진심으로 갈등하는 것 같았다. 메이가 다시 피터의 제안을 거절하기 전에 찬드라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피터, 역시 넌 좋은 조카야! M-doll, 너 이제 진짜로 와야돼. 네 정신건강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거 알잖아."


그녀가 정신건강을 챙기지 않았을 때의 기억은 피터의 뇌리에 여전히 선명하다. 메이와 눈을 마주친 피터는 그녀도 그 일을 회상하고 있고, 때문에 점점 결정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피터, 확실히 괜찮은 거니?"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금방 끝낼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그럴 수 있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는데, 다만 회계 기록을 정리하는 건 곧 다가올 그의 생일 밤을 상상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지루해서... 자신도 모르게 간간히 그 밤을 상상하느라 조금 늦춰질 뿐이었다. 그 21일 남은 밤을. 물론 피터가 일일히 세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쯤 되자 토니의 손가락이 자신의 안으로 드디어 들어와 내부를 넓히면서도,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도 짜릿한 감각이 피터의 등골을 타고 내려간다. 얼굴을 마주보면서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피터의 눈에 자신의 내부로 들어오는 토니의 반응을 하나하나 볼 수 있을—


"아주 책상 위로 침이 떨어지겠네."


피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느새 손이 무릎으로 올라와있는데—언제 그렇게 된거지?—아직 침까지 흘리고 있는 건 아닌...


잠깐.


"토, 토니?"


맞춤 제작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문간에 기대어 서 있는 저 남자는 피터의 망상의 일부가 절대 아니었다.


"그래, 무려 토니 스타크의 실물이지. 다만 평소보다는 좀 상태가 안 좋아, 48시간 내내 깨어있으면 그런 것 같더라고. 그래도 페퍼가 잡은 약속도 다 갔고 브루스가 자꾸 귀찮게 굴던 그 유전학 문제도 여차저차 해결했으니까,"


토니가 '어때, 그렇게 나쁜 상태는 아니지?'라고 하는 듯 손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피터는 그보다는 토니의 눈 밑에 진하게 드리워진 다크서클을 보며 제 바지 속에서 단단히 서있던 것에 대한 것은 몽땅 잊어버리고 순식간에 의자에서 일어섰다.


"쓰러지기 일보직전 상태 같아요, 빨리 주무셔야죠!"

"동의해."


토니가 문간으로부터 몸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래서 주거침입을 좀 해봤지. 뭐, 따지고 보면 자비스가 직원 전용 출입구를 열어주는 건 그런 경범죄와는 좀 다르지만... 내가 뭘 하려했더라? 아, 이걸 하려했지."


그리고 엉덩이에 얹어지는 손—피터가 거의 억만년동안 그리워한 것 같은, 토니의 최고의 손—이 청바지 위로 느껴지자, 3주동안 그 손을 느끼지 못 한 피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피터는 토니에게로 제 몸을 쏟아내듯 격렬하게 욕심껏 입술을 부딪히며 손으로는 토니의 몸을 훑었다. 손 끝에 닿아오는 감각이 평소와는 달랐다. 좀 더 말랐고, 근육은 작업실의 철봉이 아니라 지구 곳곳의 헬스장에서 단련된 몸이었다. 

토니는 피터만큼이나 자신도 참기 힘들다는 듯 움직이지만, 피터와는 달리 부드럽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그들의 몸을 돌려 피터의 등이 벽에 닿게 했다. 고문과도 같았던 몇 주동안 못 봤다가 다시 서로의 몸을 마주하자 모든 감각이 열 배로 곱해진 것만 같은 피터는 토니도 같은 생각일지가 궁금했다.


"으, 젠장, 네 입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토니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한 손으로는 자신의 지퍼를, 한 손으로는 피터의 머리채를 잡고 약하게 당겼다.


그러니까 같은 생각이라는 거다.




*




행위 뒤에 둘 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말도 못 하고 숨을 헐떡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금 그거 최고였죠! 아니, 토니가 저보다 좀 키가 크니까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데, 완전 잘 되지 않았어요?"


피터가 바보처럼 재잘대었다.


"우리 이거 다시 해야되는—아, 근데, 그, 별로 안 좋으셨으면...?"


토니의 표정은 피터가 뭐라고 종 잡을 수 없이 묘했다. 부드러우니까, 좋은 표정이긴 한 거고, 또 전에는 보지 못 한, 뭔가 애정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또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게 담긴 표정. 하지만 그 표정에 대해 더 생각하기도 전에 토니가 피터를 제 품으로 잡아끌어 피터의 숨은 다시 턱 막혔다.


"아니, 확실히 '최고'였네. 잘 생각했어."


그 칭찬에 피터의 가슴은 갑자기 뜨거워져서—진짜 완벽하게 정상적인 신체적 반응이다, 진짜로—그들이 다음 순간 키스할 때도 피터는 미소 짓고 있었다.


다만 키스는 예상보다는 짧게 끝이 난다. 둘 다 사정액이 다리에서 말라가고 있다보니.

둘 다 몸을 정리하고 난 뒤 피터가 옷을 주워입으며 토니에게 물었다.


"내일은 뭐하세요?"

"안타깝게도 너랑 이러지는 못하고."


장난스럽게 미소지음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반쯤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일은 파크 애비뉴를 지나서 생방송 인터뷰를 해야한다는 아주 행복하기 그지없는 일정이 잡혀있거든. 으..."


그렇게 말하는 토니의 목소리에서 피터가 예상한 바보다도 더한 짜증이 느껴져서, 피터는 의문에 차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렇게 늦게 녹화하는 방송이... 아! 혹시—"

"그래."


토니가 교수대에 선 죄수처럼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토니는 Last Week Tonight에 출연할 예정인 거다.


"젠장."

"내 말이. 그 코알라 닮은 악마새끼는 페퍼가 승낙하자마자 날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을걸. 물론 페퍼의 '승낙'은 내게는 '명령'이고."

"아직 토니가 출연한다는 발표는 안 나왔죠?"


토니가 비웃듯 짧게 웃었다.


"아직이지, 다들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테니. 아, 그쪽에서 타임 스퀘어에 광고를 하나 낼 거라는 말을 페퍼한테서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우와."

"그래서, kid."


토니가 한 박자동안 뜸을 들이다 말했다.


"볼 거야?"

"광고를요?"


그 장난에 토니가 피터의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피터는 잠깐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뒷쪽에 있던 진열장으로 넘어질 뻔도 했지만 다행히 토니는 이 과로 상태에서도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피터를 잡아냈다. 


"그럼 좀 쉬셔야겠네요."


피터가 그 말을 강조하듯 토니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토니는 곧 어깨를 으쓱이며 그 손을 치워냈지만.


"메이크업 팀이 제값을 해주겠지."

"아뇨, 제 말은... MJ 말로는, 그 사람 진짜 잘한대요."


서서히 몸을 뒤로 젖힌 토니가 책상에 손을 올려 몸을 기댄 채 뭐라 말 할 수 없는 표정으로 피터를 응시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내 이런 일을 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걸 알고는 있는거지? 아홉 살 때 나는 생애 최초로 마주한 저널리스트를 가지고 놀았어. 그 유명한 다이앤 소여를 생방송에서 울렸을 때는 직전에 있던 파티에서 술을 진탕 마시느라 사흘 밤을 샜을 때였고."


토니가 기억을 회상하는지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러니까 안심해. 대본이 없었다고 쳐도—참고로 당연히 있고—그 영국산 멍청이 하나 다루는 건, 한 손으로는 MIT 지망생들과 꽃뱀들을 물리치고 다른 손으로는 네가 타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충분히 하고도 남는 일이니까. 식은 죽 먹기야."


피터는 그 말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할지 몰라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말로는.


토니가 당장 떠날 생각이 없다면, 피터도 굳이 그를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어딘지 어색하다.


매주 일요일에 출근하는 대신, 격주 일요일에만 The Hybrid Puppy로 출근한지 벌써 세 달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그렇게 느꼈다. 물론 그 시간이 빈다는 것은 숙제도 할 수 있고, 집안일도 할 수 있고, 친구들이나 어벤져스도 만날 수 있고, 심지어 토니까지 더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모든 일들은 워커홀릭들에게 '스키니 바닐라 라떼'를 타주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좀 덜해지자 훨씬 더 쉬운 일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 비는 시간들을 매우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이 일종의 유예 기간처럼 느껴지는 자유 시간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까 불안했다.


게다가 시간이 더 남는 것과는 관계 없이 통금 시간은 전혀 변치 않기도 했고.

 

"그치만 메이—"

"내일 학교 가야하잖니, 피터!"

"저도 알지만—"

"쉬어야 학교에 갈 거 아냐."

"저 쉰다니까요, 맹세해요."

"그냥 내일 재방송 보면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잠깐, 그거 항상 유투브에 올라오지 않나?"

"생방송 인터뷰예요, 메이, 그냥 녹화 방송같은 게 아니잖아요. 거기서 한번도 생방송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다들 끝나자마자 그 이야기만 할 거란 말이에요. 특별한 케이스고, 그리고, 그리고, 토니 스타크잖아요."


피터가 하도 열심히 애원하며 열렬히 제스쳐를 취해, 하마터면 들고 있던 스파출라가 날아갈 뻔 했다.


"제발요, 저 끝나고 바로 올게요. MJ네 집은 그렇게 멀지도 않고, 어차피 저 여기 있어도 일찍 잘 것도 아니고요."


피터는 최대한 가련한 퍼피 아이즈를 하고—MJ가 제 표정을 그렇게 부르는 게 싫긴 하지만, 숙모의 마음을 녹여 인터뷰를 볼 수 있게만 해준다면 굳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힐 필요는 없으니까—기다렸다.


메이와 피터는 집에서 곧 매우 늦은 브런치를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카페를 운영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피터가 요리한 브런치를. 다만 이제 생각해보니까 질 좋은 망고를 사온 것은 피터의 실수였다. 그 망고를 보자마자 메이가 피터가 뭔가 할 부탁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버려서, 피터가 계획한 대로 브런치를 느긋하게 먹고 식탁에서 대화하는 대신 아직도 그가 바쁘게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고 있을 때 숙모를 설득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메이는 최고의 숙모라서 결국은 피터가 밤에 방송을 보러 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래서 10시간 후, 피터와 네드는 MJ의 방에 다같이 모여서 MJ가 직접 만든 케일 칩을 먹으며 방송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MJ의 가정은 써니사이드의 평화로운 구석에서 '자주 집을 비우시는 변호사 부모님'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훌륭히 이행하고 있는 집이었다. 


"그래도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아니셔서 다행이야. 물론 다루시는 특허 관련 법률이 이혼 관련 법률보다 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특허 쪽이니까 자주 주(州)를 비우시잖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성애 규범적인 사회에서 '사회화'된 고성취 인형이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랄 자유가 있는거지."


네드가 눈썹을 찡그렸다.


"너 우리 반에서 제일 공부 잘 하잖아."

"케일 칩이나 하나 더 먹고 입 다물어, 방송 시작한다."


피터는 사실은 MJ가 부모님 관련해서는 자유를 조금 덜 누리고 싶다고 여긴다는 이론이 있지만, 굳이 그렇게 말하는 대신 현명하게 입을 다물고 있기로 한다. 그는 대신 MJ와 네드가 침대에 엎드려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바닥으로 내려가 침대 발치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TV 화면에는 Last Week Tonight의 오프닝이 띄워지고 있었다.


존 올리버가 이번주에 일어난 일들을 3분동안 빠르게 정리하고 나자, 화면의 왼쪽에 띄워져있는 그래픽은 하늘색 수채화 배경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로고가 떠 있는 화면으로 바뀐다.


"그럼 이제 오늘밤의 메인 이슈로 넘어가보죠. 스타크 인더스트리. 아시잖아요, 세상 모든 공산주의자의 악몽에나 나올 법한 다국적 기업. 최근 저희가 직접 그 회사를 Uber의 대주주라는 것을 밝혀냈을 때 꽤 많은 비판을 받았고—"


방청객 쪽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 뒤로도 운전자 없는 차 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해 3,280개의 일자리를 없애버렸죠. 네, 바로 그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또 구설수에 올랐는데요, 이번에는 좀 더 무섭고 심각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화면에는 여러 방송국에서 토니가 CIA를 위해 물에 의해 퍼지는 정신 개조 약물을 개발했다는 유출된 문건에 대해 보도하는 영상들이 몇 편 이어진다. 누가 HBO 아니랄까봐, 이런 약물이 수도로 퍼진다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불러올지를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영상들도 끼워져 있었다. 몽타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한 아침 방송 호스트가 "정말 말도 안 돼요! 영화 속에서나 봤던 거잖아요!"라고 외치는 영상이다. 방청객의 팽팽한 웃음소리에 존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치 우리가 '킹스맨' 시리즈에 사는 것만 같아요."


존 올리버의 왼편 그래픽에 토니가 '킹스맨'의 다른 캐릭터들 위로 위협적으로 합성된 영화의 포스터가 나타났다.


"다만 이번에는 세계를 구한답시고 파괴하려는 그 과대망상증 환자가 실존 인물이라는 게 다르지만."


MJ가 피식 웃었다. 피터는 썩 좋은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 위해 애를 썼다.


존 올리버는 그 후로 다양한 아나운서들, 블로거들, 이번 일로 돈을 좀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정치인들의 반응을 설명한 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노코멘트" 태세까지 전달하며, 내내 유출된 문건을 화면에 띄웠다.


"자, 이 모든 것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은 당연히 토니 스타크겠죠. 아시잖아요, 전쟁광으로서는 유일하게 People지에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사람이자 최근 뜬금 없이 지역산 커피에 정을 붙인 것 같은 인물."


그리고 화면에 뜨는 것은 The Hybrid Puppy에 들른 토니의 사진이다. 피터가 깜짝 놀라 마시던 탄산음료에 켁켁대고 네드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야, 야, 저기 네 팔꿈치 나왔어! 너 유명해지겠다!"


그 말에 MJ가 빵 터지고 피터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일 동안, 화면 속에서는 존 올리버가 어깨를 축 내리고 부러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칭 '박애주의자'이자—"


으아, 이렇게 비아냥대는 걸 가만히 참아줄 토니가 아닌데...


"—전직 '죽음의 상인은,"


으아아아.


"인터뷰 스케줄을 잡기가 스티븐 호킹보다도 어려운 분이기도 하죠. 달라이 라마보다도, 에드 스노우덴*보다도요."


수면 아래에서 끓다시피 하던 보는 이들의 기대감이 그 말과 함께 폭발하듯 방청석에서 큰 환호 소리가 났다. 존 올리버가 씨익 웃었다.


"해냈냐고요? 당연히 해냈죠! Vogue지에서 '조끼를 제대로 입을 줄 아는 유일한 미국인'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토니 스타크 씨를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방청객들의 큰 박수 소리와 함께 토니가 등장한다. 불과 어젯밤에 봤던 눈 밑의 어둑어둑한 다크 서클들은 흔적도 없고, 털 한 올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수염마저 완벽하게 면도된 상태로. 토니가 어딘지 위험해보이는 미소와 함께 존 올리버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피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본이든 아니든 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존 올리버가 메인 데스크가 아닌 세트 가운데에 놓인 의자와 테이블을 향해 손짓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어디 한번 이슈에 풍덩 빠져보실까요."

"수도 관련이라고 굳이 물 관련 말장난을 하셨네요. 참 참신도 하셔라."


토니가 쾌활한 미소로 느긋하게 말하고는 자켓의 단추를 풀고 자리에 앉았다. MJ가 옆에서 뭔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피터는 그녀가 뭐라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말일리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본인은 토니가 챠콜색 자켓을 입고 붉은 넥타이를 맨 채, 마치 방송의 호스트인 양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폼에 침을 흘리지나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맞다, Vogue지에서 그렇게 꼽히신 거 축하드려요. 영국인인 저도 절대 못 따냈을 타이틀인데."

"아, 별 거 아닙니다. 몸매만 된다면 말이죠."


피터가 방청객들과 함께 피식 웃었다. 토니가 그 소리를 듣고 방청객들을 향해 능글맞은 미소를 던졌다.


"뭐, 제가 처음부터 진부한 말장난으로 시작했으니 이런 말 들어도 싸긴 하네요."


토니는 동의한다는 듯 눈썹 하나를 치켜올리지만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타크 씨—"

"토니라고 하셔도 돼요."


토니가 너그러운 손 제스쳐를 취하며 그렇게 말하자 존 올리버는 놀란 표정을 짓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 피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토니 쪽의 PR팀이 저렇게 반응하라고 시킨 것 같았다.


"그래서요, 토니. '정신 개조'. 무섭던걸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꽤 현실성 없는 소리기도 하죠."

"공식적인 입장인가요?"

"아니, 과학적 사실입니다. 사실 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분야거든요. 아무래도 당신네 팀이 이번주 내내 물 관련 말장난 생각해내려 머리 쥐어짜느라 좀 놓치신 것 같은데, 자료 좀 보내드려요?"


피터와 네드가 박장대소하는 동안 MJ가 인상을 썼다. 화면 속의 두 남자는 몇 번 더 말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존 올리버는 척 봐도 토니로 하여금 어려운 과학적 사실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설명하게 만드는 것을 대단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피터는 토니가 존 올리버의 우스꽝스러운 비유들에 맞춰 설명하느라 고생하는 걸 보며 좀 움츠렸지만, 그조차도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수돗물로 우리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의 답을 페니스 관련 비유로 표현하는 게 꽤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토니의 입에서 페니스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건 어젯밤 사무실에서의 일들이 생각나게 해서, 친구들이 모여있는 이 자리에서 듣기에는 매우 곤란했지만.


존 올리버는 곧이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지사들과 자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피터는 그나마 나은 주제인 것 같아 좀 안심했지만—곧바로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얼마나 많은 브랜드와 회사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낸 커다란 도표가 화면에 떠 다시 굳었다.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사실 세계 정복이 목표시죠? 그게 궁극적인 목표시잖아요. 정말 손이 모든 파이 도표란 파이 도표에 다 닿으시는—아, 혹시 파이 자체가 다음 과제신가요? 요식업 쪽으로 나가시나?"


토니가 매우 두드러지게 눈을 굴렸다.


"네, 물론이죠. 시간이 어찌나 남아돌던지 시리얼을 한 마흔 두 종류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더라고요."


잠깐 말을 멈춘 토니가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방금 그거 비꼰 겁니다."


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맥락에 맞지 않게 인용되면 안 되겠죠. 마치 당신이 TechCon에서 모든 산업이 당신의 기술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그 말이 당신이 시세 조작을 했다고 시인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처럼요."


그 말에 토니가 역겹다는 듯 내지은 표정은 대본 따위에서 나온 게 아닌 확연한 진심이었다.


"저와 제 팀이 그렇게까지 비굴해질 리가."

"그럼 고작 작년 한 해동안만 보안 산업 분야에서 '스타크 보안 해결책'이라는 당신의 자회사가 이백 퍼센트 성장률을 보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단순히 우리가 최고라는 사실로요."


토니가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있게 말했다. 끝내주게 섹시하게도.

하지만 존 올리버의 눈빛은 이제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에 MJ가 상체를 일으키고 앉자 피터는 제 어깨가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시와의 수도 계약도 따내셨고요."


토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질문할 때마다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계시죠. 뭔가 좀 구체적으로 물어보려고 하면, 당신네 회사는 항상 '영업 비밀'이라는 말 뒤에 숨고는 하더군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마치 당신이 정부와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높은 값에 라이센싱 계약을 맺고 있는 그 사이버 보안 프로토콜들처럼요."

"그렇습니다."


피터는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방금 언급된 두 시스템 모두, 적어도 피터가 알기론, 비공식적으로 AI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니까—시의 수력 공급은 KAREN이, 그리고 사이버 보안 관련은 모두 자비스의 좀 더 멍청한 버전의 AI가. 영업 비밀도 물론 영업 비밀이지만, 울트론 사태가 여전히 생생한 대중에게 이 정보를 주고도 안정을 바라기는 무리라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 문제는요?"

"이 일에 있어서 투명성을 좇다가는 보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의 위험성으로부터 우리나라와 우리의 시민들을 보호해주는 그 보안에요."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가 당신으로부터 보호 받아야할 거라고들 하는데요."


그 말에 MJ가 '잘한다!'라고 환호함과 동시에, 화면에는 스태프들이 오늘 낮에 타임 스퀘어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담긴다. 방금 존 올리버의 말을 뒷받침하듯, 편집된 영상 속에서의 시민들은 모두 토니 스타크를 경계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피터는 이게 얼마나 부당한 처사인지를 집어내려 입을 열었지만 방송의 호스트가 시인하는 게 더 빨랐다.


"물론, 당신의 팬들도 꽤 만나긴 했죠."

"만나지 않았을 리가 없죠."


토니가 조소하듯 말하며 다시 스튜디오 속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보여지는 인터뷰 모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테네시에 살며 휴일을 맞아 맨해튼으로 놀러온 경찰 한 명이다.


'뭐, 그 분이 파는 건 대부분 저한텐 너무 비싸서 못 사는 게 더 많지만, 전 누가 뭐라든 신경 안 써요. 토니 스타크는 제게는 영웅이에요. 우리 시의 파견 센터들한테 기부해서, 우리가 돈 걱정하는 대신 정말 우리의 일을 하면서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게끔 했거든요. 정부는 절대 못한 일이죠.'


스튜디오 속에서는 방청객 몇 명의 박수소리가 들린다. 토니는 그들에게 여유롭게 웃어주며 윙크하지만, 피터에게는 그의 눈가가 매우 부드러워졌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방금 그 반응에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는 거다.

피터는 이해할 수가 없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진심을 보여주실 수는 없는 거야?


"사실 알고 보면—"


존 올리버가 그 말과 함께 입을 열었지만 토니가 말을 뚝 끊었다.


"잠깐만요, 무슨 말씀을 하실 지 알 것 같은데요.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파견 센터 여러곳에 기부를 해왔기는 하지만, 그게 다 연방 정부가 파견 센터를 민영화하려고 들고 있기 때문에 발 맞춰 행동하려는 약아빠진 속셈일 거라고 하시겠지."


존 올리버는 그 말에 당황하지도 않았는지, 아니면 했지만 숨기는 건지 몰라도 태연하게 대꾸한다.


"네, 바로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당신이 뉴욕 시의 지하철에 열심히 기부하고 여러 곳을 재건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에서는 지하철 민영화가 당신에게 넘어갔다고 했었죠. 공통점은 본인도 인정하시죠?"

"아주 기본적인 비유 하나 들자면, 그게 다 면접이나 다름없었던 겁니다만."

"그래도 이번 일은 응급 상황에 파견되는 인원들을 다루는 건데요. 주 정부의 관활로 남겨야할 부분 아닌가요?"

"지금까지 관리가 그 모양인데 퍽이나요."


토니가 단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당신이 관방체계와 이미 맺은 계약들을 염두했을 때 여기까지 손을 뻗는 건, 뭐랄까, 좀 심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그 말에 진지한 얼굴을 한 토니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보안은 범죄보다 더 체계적이어야 하는 법입니다."

"네, 체계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죠, 스타크 씨?"

"저는 최악을 경험한 사람이라서요."


토니의 목소리에는 더 진정성이 실리지만, 동시에 좀 더 어두워지기도 했다. 피터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고 그를 보듬어주고 싶었지만 자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 최악에 맞서는 법을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집니다. 빈털터리 정부가 최악의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기만을 믿고 기다릴지, 아니면 좀 자존심 상하더라도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지."


정적이 흐른다. 피터의 눈에 비춰진 존 올리버는 대본이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 같아보여, 그는 숨을 참았다. 분명 대본 있다고 했는데. 존 올리버가 숨을 깊게 내쉰 후에 묻는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면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될 거다, 이겁니까?"


토니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뇨. 제 말을 왜곡하고 계시네요, 존."


이건 대본에 없던 내용일 것이라는 걸 피터는 그 순간 알아챈다. MJ는 무릎에 놓여진, 여전히 트위터 앱이 켜져있는 제 핸드폰은 잊은 듯 TV 화면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무슨 뜻이셨는데요? 부디 설명해 주시죠."

"또 페니스 비유로 해드려요? 아니면 좀 제대로 된 말로 설명해도 될까요?"


토니가 쏘아붙이자 존 올리버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좋네요. 911 응급센터 문제만 봐도 말이죠—기억하시려나 모르겠는데, 당신이 직접 공론화했던 그 사태 말이에요. 응급센터라는 곳이 사람들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어요. 아직 IP 기반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아서인데, 또 그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자니 주 정부에서는 911 자금을 자기들 배 채우는 데에 빼돌려서 돈도 없죠. 현실이 이렇게 심각한데, 아직도 뉴욕이 제게 대중교통을 넘겨줬다고 다들 놀라고나 있다고요?"


토니가 코웃음을 쳤다.


"그 나이브한 시위자들은 다들 본인들이 그렇게 도덕적인 줄만 아는데, 뉴욕에 물 삼천만 갤런이 전부 새지 않도록 막을 건 누굽니까?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다고 딱히 돈을 더 벌 리가 없으니 지지부진하게 남아있는 의료계를 대신해서 관련 연구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건 또 누구고요? 누가 보면 아주 악마와 계약이라도 하신 줄들 알겠어요."

"글쎄요,"


존 올리버가 드디어 손을 올리며 다시 입을 뗐다.


"울트론은—"

"울트론은 결함이 있던 실험이 통제를 벗어난—"

"당신 사전에서 '실험'이라는 말이 '살의를 품어 스스로 실체화하려는 AI'라는 말로 치환되는 줄은 몰랐는데요, 토니."

"저야말로 에미 상까지 탄 당신의 방송이 대중에게 실체 없는 공포감이나 조장하려 들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그럼 상원이 AI의 개발에 제한을 두겠다고 제안한 것에 반대하시는 건가요?"

"당연히요. 그래도 정 몇백만 명의 물을 다 뺏어가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들 치신다면, 뭐 마음대로 하시라고 해요."


정적.


무릎에 올려놨던 피터의 팔꿈치가 스륵 빠졌다. 아 세상에, 설마 방금 토니가 정말...


"그 말은, AI가—인공지능이—시의 수력 공급 시스템을 돌리고 있다는 건가요? 그게 당신의 '영업 비밀'이고요?"


존 올리버가 대단하게도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토니의 표정은 단 한치도 변하지 않는다. 일순간에 그의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았다. 피터조차도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타임 머신이라도 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기분일 거라는 짐작은 갔다. 

포츠 씨가 내건 '눈 굴리기 금지' 조항을 무시한 건 이제 문제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벌써 방송 시간을 초과한 것 같군요, 존."

"그런 것도 같네요."


피터는 한 번도 존 올리버가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광경이었다.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켓의 단추를 채운 뒤, 방청객에서 야유하는 소리와 분노에 차서 지르는 몇몇 고함들을 뒤로 하고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피터는 고작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에드 스노우덴 (Ed Snowden): 2013년, NSA의 자국민 감시 프로그램 관련된 문건을 유출한 인물. 존 올리버가 실제로 인터뷰를 했고, 실제로 본문 속의 토니처럼 어려운 전문 용어와 이론들을 페니스 관련 비유로 표현하도록 강요(ㅋㅋㅋㅋ)당했습니다. 여기서 풀 영상이 시청 가능합니다 :D





- 존 올리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의 방송인들 중 한 명인데 토니를 인터뷰하는 시나리오로 상상해보니까 너무 재밌네요! 실제로 방송 포맷과 굉장히 비슷해서 너무 재밌게 번역했어요ㅎㅅㅎ~~

- 이번 편에서부터 성인본이 따로 나오게 됐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 한 분이 수위 높은 글이 성인인증 없이 업로드될 경우 (포스타입의 규정에 맞지 않아) 정지를 먹을 수도 있으니 공지를 확인해보라는 조언을 주셨는데, 확인해 보니 실제로 그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어서 비록 원 글에는 없는 성인인증이지만 걸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수위가 있는 편이면 쭉 이렇게 따로따로 나올 것 같으니 참고해주시고, 조언 주신 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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