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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THE GREATEST

연령 반전 + 센티넬버스 토니피터 / 사월 (@Toffeenut_prap)님과 연성교환




  숨이 버겁게 차올랐다. 토니는 이를 꽉 악다물며 제복을 입은 몸이 서둘러 뛰도록 종용했다. 먼 거리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파열음이 일정한 시간대로 팍, 팍, 하고 터졌다. 곧이어 탕 하는 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들리던 폭발음과 교차되는 것처럼 박자에 맞춰 사방에서 온갖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15초 가량 들으며 뜀박질을 하던 토니는 산소가 부족해지는 기분에 스스로에게 힘을 내라고 채찍질을 해야 했다. 눈을 질끈 감은 그가 다시 눈을 부릅 떴을 때, 피터는 거짓말처럼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토니와 눈이 마주친 그가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토니는 그 동작이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오히려 달리기에 더 박차를 가했다. 







  토니 스타크는 철이 든다는 것은 성장의 당연한 결과가 아닌 필요에 의한 일종의 생존 요법이라고 여겼다. 애초에 특정 연령대에 다다르면 행동 방식이 바뀌어야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은 그로서는 개인 사이즈에 맞춰지지 않은 정장처럼 불편하고 갑갑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얼굴, 재력, 지능, 재능, 심지어는 화술까지 안성맞춤으로 타고난 토니 스타크는 철이 없다는 평가에도 타격 하나 입지 않은 얼굴로 뻔뻔하게 대꾸하고는 했다. 당연하지. 내가 왜 철이 들어야 하는데? 굳이 그렇게 바뀌지 않아도 세상을 잘 살다못해 온통 주물러버릴 게 뻔한 그를 보면 누구든 그 대답에 입을 떡 벌리면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철이 들어야 할 이유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어떠한 검사나 검진을 받기도 전에 호화로운 1인용 병실 밖을 지나가던 환자 한 명이 긴급히 들이닥치며 해준 말로 알 수 있었다. 그 날 하워드 스타크와 마리아 스타크는 아이의 출산에 마음껏 기뻐하기도 전에, 링겔을 꽂고 남의 병실에 침입한 주제에 환하게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말하는 그 환자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아이, 가이드로군요! 

  굳이 접촉이 없이도 병실 밖을 지나다니면서도 느껴질 정도로 가이딩 스킬이 강력한 아이가 틀림 없다는 그 오지랖 넓은 말에는 무슨 시트콤 속에 나올 상황처럼 주변에 서있던 의사와 간호사들로부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스타크 가에서 가이드가 나오다니 나라에 큰 보탬이 될 인재가 될 거라나. 그렇게 이후에 뻔한 검사까지 마치고, 뻔한 결과에 따라 출생 신고를 하자마자 법에 따라 센티넬·가이드 신고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가 바로 앤서니 에드워드 스타크였다. 태어나서부터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었으니, 그 사람이 19살이 되도록 자칭으로도 타칭으로도 철이 덜 들었다는 평을 듣는다는 소리를 그때 그 병실 밖의 이름 모를 센티넬 환자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넘어갈 것이 뻔했다.

  하지만 빠르다 못해 잽쌌던 가이드로서의 발현과 무지막지한 칭찬과 달리, 토니가 실제로 가이딩을 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초에 센티넬과 가이드가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하는 이유였던, 토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길고 지겹게 이어지던 전쟁에 갈려나가는 다른 센티넬들과 가이드들과 비교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전선이 아닌 민간인들의 사회에는 간간히 이어지는 폭격을 빼면 비교적 평화로웠다고는 하지만, 가이드인 토니의 형질과 유난히 뛰어나다던 그 능력을 생각하면 진작에 전선 가까이의 센티넬과 가이드 시설에 살며 각인도 되지 않은 센티넬들의 손을 매일매일 어루만져 줘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대답은 간편하게도, 돈, 능력, 그리고 혈연이었다. 하워드 스타크는 전쟁에 쓰일 무기를 만드느라 혈안이 되어서 아들과 시간을 잘 보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제 아들이 전선에 나가지만은 않게 온갖 손을 써뒀던 것이다. 게다가 세상은 어찌나 간편해졌는지, 최고의 매치 시너지를 이뤄낼 수 있는 센티넬과 가이드 조합을 둘의 DNA 배열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부에서는 시설에 머물러 있는 센티넬들 중 유전적으로 토니와 배합이 맞는 이가 없었는지 굳이 하워드 스타크를 꺾어가면서까지 토니 스타크를 데려갈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세상은 토니 스타크를 위해 지어진 곳 같았다. 뭐 하나 풀 옵션으로 타고나지 않은 게 없을 뿐더러 태어나고 나서의 운조차 마음껏 살라고 탄탄대로까지 깔아주는 건 불공평했지만, 그의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면 되려 그 언젠가 매우 역사적이고 건설적인 인물이 했던 말을 읊어줄 것이 토니 스타크였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해요. 익숙해지세요.' 토니는 그렇게 원래 불공평할 인생을 쭉 살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다만 태어나서부터 시트콤을 한 편 찍고 사춘기 전반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의 재벌 주연이나 다름 없었던 남자의 삶이 그렇게 별 일 없이 순탄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토니 스타크 기준에서도 확실히, 아주 많이 오만한 가정이자 실수였다.





*





  "토니 스타크."


  비가 오는 것 같았다. 토니는 뚜껑이 없는 시원한 62 캐디의 운전석에서 정작 운전할 생각도 없이 널부러져 조금 전의 뜨거웠던 시간을 상기하며 바보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시간을 가늠할 틈도 없었지만 피부에 닿아오는 온도로 대충 예상해 보자니 밤은 깊다 못해 새벽이 된 것 같았고, 거리는 장사에 혈안이 난 한 나이트클럽의 간판 조명을 빼면 어둡기 짝이 없었다. 토니는 얼굴 위로 떨어지며 앞머리를 이마에 착 달라붙게 하는, 이제 조금 세기를 더해가는 비를 맞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우산이 비를 차단하지만 않았으면 계속 그러고 있을 터였다. 토니는 눈을 뜨지도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피터."

  "그래."


  그렇긴 뭐가 그래. 토니는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으며 이제야 눈을 반쯤 떴다. 토니의 자동차 문의 옆 바깥에서 팔을 내밀고 토니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피터의 자세 탓에 고개를 돌려도 시선을 치켜세우지 않는 한 그의 상체만이 보일 뿐이었다. 지겹지도 않은지, 항상 연구할 때 흰 가운 밑에 입는 체크무늬 셔츠를 이번에는 초록색으로 입고 온 그의 모습에 토니가 놀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월급이 부족해요? 요즘 일도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좀 올려드려? 그 말에 우산을 든 피터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지 손목의 핏줄이 더 선명하게 돋았다.

 

  "네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해 입사한 게 아니야."

  "물론이죠. 다만 우리 아빠가 토니 스타크 관련 일로 부탁하면 연구복 벗어던지고 부리나케 달려올 뿐.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그 말에 피터의 눈매가 더 굳어졌다. 토니는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 에피네프린이 온 몸에 솟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 슈퍼모델과의 뜨거운 시간을 보낼 때보다도 더 그렇다고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지. 지금으로부터 꼬박 150년 전 캘리포니아의 금광 러쉬 시절, 처음 금을 발견한 사람의 심정이 이랬을 것이다. 내가 원하고 있던 것인 줄도 몰랐지만 막상 보고 나니 지금껏 찾아왔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하고 온 세상이 환하게 트이듯 깨달음이 드리워오는 기분. 머리 위에서는 피터가 우산을 반대쪽 손으로 고쳐 쥐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말라가던 얼굴에 다시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토니의 얼굴 위로 비친 네온사인의 불빛 위로 피터의 손이 토니의 얼굴로 다가가려다 멈칫 하고 다시 떨어지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그 움직임에 토니가 피터의 눈을 마주치며 씨익 미소 지었다.


  "가자. 하워드가 찾으셔. 차에 물이 너무 고였으니까 일단은 나랑 같이…"

  "왜 그렇게까지 해요?"


  또 빗방울. 우산을 들 줄을 모르면 들지를 말라니까. 피터가 당황했다는 것은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흔들리는 우산 때문에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한 번 더 찔려보려고 입을 열던 토니는 피터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와 우선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스타크 씨가 부탁하시는 건 뭐든 해야 하니까."


  물론 입을 다문 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토니 스타크의 침묵은 적어도 말같은 말을 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특권같은 것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헛소리 하지 말라는 거다.


  "우리 아빠가 다른 부탁 하면 연구원이 왜 그런 걸 해야하냐며 틱틱거린다면서요?"


  어, 눈동자 흔들린다. 토니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눈을 감으며 피식 웃었다.





*




 "나… 참."


  토니는 눈 앞에 들이밀어진 종이와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머리가 벗겨진 남자를 번갈아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줄무늬 넥타이를 맨 남자는 순진해보일 정도로 순한 눈으로 토니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심해보이는 웃음이었지만 눈매는 굳건했다. 토니는 남자가 종이를 들이밀며 했던 질문을 무시하며 손가락 새에 들고 있던 것을 다시 입가로 가져가 깊게 들이마신 뒤 동문서답을 했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쉴드 요원의 힘을 간과하시네요, 스타크 씨."

  "이거 주거침입죄예요. 여기 내 집인데."

  "손가락 사이에 드신 건 주의 마리화나 관련 법률에 어긋나잖아요. 서로 봐주기로 하죠."


  인상을 팍 찡그린 토니가 보란듯이 담배로 말린 마리화나를 한 모금 더 들이마셨다. 그래, 쉴드 (SHIELD). 들어본 적이 있었다. 분명 연도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나 가이드예요, 하고 등록한 곳이 거기니까. 정부에서 센티넬과 가이드 관리를 도맡는 부서인 쉴드를 그 이후로 19년동안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토니는 스스로를 콜슨이라고 소개한 요원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사실 담배보다 훨씬 몸에 좋은 편이라는 거 알아요? 하는 말로 딴청을 피웠지만 콜슨 요원은 생각보다도 훨씬 집요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는지 토니의 얼굴 앞으로 다시 그 종이를 내밀었다. 뻔뻔하기로는 둘째 갈 일이 자주 없었던 토니에게는 아까부터 거실에 불쑥 나타나 다짜고짜 제 요원 카드와 이 종이를 들이밀던 그의 행태가 놀라움을 넘어 대단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센티넬입니다. 조금 과장해서는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릴 지도 몰라요."

  "관심 없다니까요."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가이드가 없어요, 다들 오히려 탈진해서 쓰러지죠. 하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네, 제 DNA가 최적의 합이라는 걸 알아내셨겠죠. 놀라워라. 왕자님의 유리구두가 제 발에 꼭 맞는다니 영광이긴 한데요, 그 센티넬의 가이드가 되려면 저도 입대해야 하잖아요. 싫다니까? 제가 전쟁에 기여한 바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실이었다. 토니가 흥미를 보이며 연구해서 내놓은 고성능의 인공지능 JARVIS를 비롯해, 최근 까리하게 금색과 빨간색 위주로 도색 작업까지 마친 전신 아머들은 당장 다음주부터 전선에 투입이 될 에정이었으니까. 토니가 심심풀이 삼아 연구했던 그 아머들은 하워드에게 뭔가 전달하려다 실수로 토니의 작업실로 들어와버린 남자가 무심코 철로 만든 남자를 보는 것 같다고 감탄했던 소리 때문에 꽤 쉽게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아이언맨'. 콜슨 요원도 그걸 상기하는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 워 머신 아머들이요. 제 부서는 아니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름 틀렸는데요."

  "바뀌었어요. 전쟁이잖아요. 아이언 패트리어트라는 이름도… 어쨌든 제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고요."


  젠장. 토니는 오늘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묘하게 기분 더러운 예감에 소파 등받이 위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콜슨 요원은 그 틈을 타서 토니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슬며시 빼가서 불을 끄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어서 눈을 뜨기는 했지만 그걸 막을 틈도 없었다. 토니가 엉덩이가 지져지며 불이 사그라드는 담배의 빨간 불을 노려다보고 있다가 콜슨 요원이 입을 여는 것을 주변 시야로 잡아내고 선수를 쳤다.


  "콜슨 씨, 저는 애국심도 없고, <선데이 타임즈>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도덕적 잣대도 딱히 없어요. 그런 제가 왜 이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겠어요.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같은 사람은 다른 곳에서나,"

  "왜 굳이 영화 속 인물을 논하세요, 스타크 씨? 우리의 뉴욕에도 히어로가 있잖아요."


  대체 종이를 몇 장을 준비해온 건지, 그 말과 함께도 콜슨은 망할 종이쪼가리를 한 장 더 꺼내더니 토니의 앞에 내밀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영화 속의 해설 장치처럼 내밀어지기라도 하는 꼴이 토니의 궁금증을 자극해 그는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종이에는 사진과 함께 기본적인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토니도 간간히 소식을 접하고 몇 번 텔레비전에서 보기까지 한, 스스로를 '뉴욕의 친절한 영웅'이라고 부르는 인물의 것이었다. 스파이더맨? 이게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고 나무 아깝게 굳이 종이에… 라고 말하며 종이를 뒤집은 토니는 양면으로 작성된 종이의 반대편에 쓰인 인물 정보에 할 말을 잃었다. 콜슨 요원은 단정한 목소리로 착실하게 해설했다.


  "관련이 많죠. 당신의 센티넬이 바로 스파이더맨이니까요."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힘들게 지켜오던 정체도 보셨으니까, 정말 해주셔야 합니다. 강력하게 종용하는 콜슨 요원의 말에도 토니의 오감이 감지한 것은 그저 종이에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과 단정하게 쓰인 세 단어 뿐이었다. PETER BENJAMIN PARKER. 아버지가 아끼는 연구원이자, 거짓말을 잘 못 하는 거짓말쟁이이자, 시시하게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일을 하는 체크무늬 마니아 너드는 그날 토니의 머릿속의 카스트에서 몇 등급을 건너뛰어 올라갔다.





*





  네가 대체 왜. 스타크라는 이름이 붙은 정부의 센티넬·가이드 시설에서 콜슨 요원의 안내로 피터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딱 그랬다. 토니는 짐짓 순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었고, 그는 왠지 모르게 창백해진 표정으로 때아닌 내외라도 하듯 간단하게 목례를 했었다. 토니는 항상 그랬듯 그런 피터가 무척이나 재미 있었다.

  공식적으로 가이드로서 군대에 들어왔다지만 토니의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풀 스탯은 어딜 가나 풀 스탯인 법이었고, 하워드는 토니가 가이드 군사로서 참여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가 안전하고 '스타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낼 수 있도록 손을 써, 토니는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제작한 센티넬·가이드 시설에서 쾌적하게 방은 물론이고 연구실까지 제공 받았다. 다만 토니는 이런 특수한 편의가 없이도 가이드 자체의 일이 크게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훈련 같지도 않은 훈련은, 유리벽 밖에서 피터의 훈련을 지켜보다 그가 유난히 숨을 크게 헐떡인다 싶으면 들어가서 손을 잡아주거나 조금 짖궂고 싶은 날에는 포옹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피터는 땀에 젖은 채 숨을 가파르게 쉬며 손을 내밀다가 토니가 손을 잡는 대신 그의 허리를 끌어와 안으면 놀란 듯 상체를 뒤로 빼려는 것처럼 등을 움찔거렸지만, 정말로 피하지는 않았다. 

  피터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은 중독적이었다. 토니는 새삼 연구실에서 보안경을 끼고 화학 물질을 조심스레 섞거나 연필로 뭔가 급히 휘갈겨 쓰고 있던, 역시나 체크무늬를 입고 있던 피터 파커와 이 '현직 센티넬이자 전직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간극에 혼자 몇 번을 놀랐다. 그 간극은 특히나, 피터 역시도 이 시설에서 민간인 시절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토니가 손을 써뒀기 때문에 매일매일 더 대두되는 것이었다. 토니는 초인적인 힘으로 적진에 잠입해 그들의 무기를 무력화하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피터와 유리벽 너머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눈 속에 담겨있던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날카로움을 잊지 못하면서도 피터가 얌전하게 순한 강아지같은 눈으로 연구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알짱거리며 그를 귀찮게 하고는 했다. 누누히 말했지만 토니는 피터의 반응이 재미 있었던 것이다. 


  "저 궁금한 거 있어요."

  "응, 말해."


  집중하느라 눈은 떼지도 못하면서 순순하게 대꾸하는 피터의 모습에 토니가 하, 하고 낮게 웃었다. 그제서야 피터는 토니 쪽을 흘긋 봤다. 토니는 최대한 진솔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스파이더맨 유니폼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거예요, 아니면 재봉틀 쓴 거예요?"

  "…그게 궁금해?"

  "딱히?"


  뭐야, 방해하지마. 피터가 토니가 일부러 자신을 간섭하려고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세모꼴로 뜨고 토니를 째려보았다. 와, 다른 사람을 째려볼 수 있는 인간상이었어? 토니는 제 안의 피터의 이미지가 매우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째려보는 피터의 시선이 유리벽 너머의 전직 스파이더맨의 그것과 겹쳐져 보이면서 토니의 뉴런들은 에피네프린으로 짜릿하게 달아올랐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거짓말도 못할 정도로 공부만 한 것같은 너드가 사실은 쫄쫄이를 입고 밤마다 뉴욕을 활보했다니. 이렇게만 말하면 스트리퍼같지만, 아, 그러고 보니.


  "저 근데 진짜 궁금한 거 있어요."

  "물어보지마."

  "너무하다, 자라나는 청소년의 과학적 호기심을 짓누르다니. 본인도 청소년 탈출한지 얼마 안 됐으면서, 이러면 애들이 보고 뭘 배우겠어요?"

  "나 청소년 탈출한지 한참… 됐다. 뭔데 그래?"


  피터는 이래서는 오늘 연구를 할 수 없겠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던 현미경을 옆으로 치우고 토니의 눈을 마주했다. 토니는 다시 온 얼굴로 힘껏 순진무구하고 눈이 똘망똘망한, 얼굴이 조금 반반할 뿐인 학업 열의에 가득찬 표정을 해 보였다.


  "스파이더맨은 섹스 어떻게 해요?"

  "야!"

  "솔직히 그냥 일반적으로 하면 진짜 재능 낭비 아닌가? 내가 스파이더맨이라면,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하필 그 순간 웃음이 터져서 더이상 진지하게 궁금한 연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토니는 피터의 손에 떠밀려 그의 연구실에서 쫓겨나고서도 뇌리에 선명한 그의 표정에 한참을 웃었다.





*





  사소하게 다쳤다고 했다. 몸의 절반이 피로 젖다 못해 축축해져서, 신발에까지 피가 고여서 걸을 때마다 제 피를 밟느라 철퍽철퍽 소리가 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그날 유난히 연구가 잘 되길래 건성으로 휘휘 내젓는 손짓 하나로 훈련을 빼먹고, 훈련이 끝났을 때 피터가 평소보다는 조금 더 다쳤다길래 '가이딩 룸'에서 그를 안아주려고 기다리고 있던 토니는 노크 소리에 그의 부주의함을 놀리려 웃으며 문을 열었다가 피로 목욕을 하고 온, 여기까지 혼자 걸어온 것이야말로 초인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피터의 상태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제 옆구리를 붙잡고 상체를 숙인 채 숨을 헉헉 몰아쉬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피터가 고개를 들어 토니와 눈을 마주했다. 그 상태로 둘 다 멈춰있는 채로 잠시 흐르던 침묵을 거칠게 깨뜨린 것은 토니였다. 

  토니는 손을 뻗어 피터의 허리에 감아 그의 몸을 끌어당기고는 빠르고 급박하게 그에게 입을 맞췄다. 몸이 당겨져 토니의 단단한 상체에 부딪힌 피터는 여전히 한 손으로 옆구리를 붙잡고 있는 채로 어정쩡하게끌려가 바르작대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피에 젖은 한 손으로 토니의 얼굴을 감싼 채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의 키스를 받았다. 토니는 그때에서야 가이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편이라는 제 형질을 실감했다. 피터의 상처를 물리적으로 치유해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제 품 안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며 간절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키스에 답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다. 물론 제 조급한 움직임이 그에게 투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자신도 피터를 꽉 잡고 깊고 거칠게 그를 탐하고 있었다.

  키스는 급박하게 시작된 만큼이나 급박하게 끝났다. 피터가 숨을 헐떡이며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토니를 밀어내려 하자 토니는 여전히 굳어있는 얼굴로 제 어깨로 올라온 손을 턱, 잡고 제지했다. 힘으로 따지면 피터가 언제든 그를 밀어낼 수 있었겠지만 피터는 순순히 잡힌 손을 빼지 않으며 비틀대듯 토니에게 기댔다.


  "의료진한테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토니가 말을 놓고 바싹 말라붙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피터는 그런 것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자연 치유 돼. 메타휴먼이라."

  "그래? 잘됐네. 좋아. 그래서 말인데. 이 짓은 그만두는 게 좋겠어."

  

  …뭐? 개연성이 전혀 없는 말에 피터가 토니의 몸에서 머리를 재빨리 떼다 어지러웠는지 잠시 비틀거렸다. 토니는 그런 피터를 한 손으로 붙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가 사소하다고 표현할 정도면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감도 안 잡히니까. 스타크의 이름을 단 시설에서 당신이 이렇게까지 다치면 내가 어떤 기분이겠어?"

  "네가 무슨 상관… 아니, 이 정도로 그만두라고? 너 지금 우리가 전쟁 중인 건 알고 있는 거야? 난 이런 걸 각오하고 들어왔어."

  "다른 센티넬들은 이렇게까지 다치지 않잖아, 적진에 투입되어도 당신처럼 깊게 들어가는 건 못 봤다고. 차라리 스파이더맨 짓을 하면서 사람을 구해. 아니면 좀 더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내가…"

  "아니, 하지마! 토니, 네가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는 법이야."


  피터의 얼굴은 아연하게 질려있었다. 토니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 반사적으로 더 밀어붙였다. 피터의 제복에 묻은 피는 검붉게 굳어가고 있었고,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는 가신 핏기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는데도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 그가 답답했다.


  "내가 왜 못해? 나 토니 스타크야. 당신 숙모도 살아계시다면서, 전쟁에서 이렇게까지 다치면 죄송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 든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벤과의 약속이고, 또,"


  피터가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거세게 일갈했다.


  "이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난 전장에서 죽으려고 지원했어."


  토니는 입을 벌린 채 제게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말하는 피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을 각오'라는 개념이 생소한 머릿속에서는 피터의 저 열렬함은 드라마틱하고 극적일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벤? 벤은 또 누구야. 또 결국 죽든 말든 현대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될 것도 아니고, 그저 죽어나간 센티넬 군인 1이 될 뿐이면서, 차라리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활약이 더 후세에 기억될 것이면서 왜 저렇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거야. 제 말대로 슬슬 상태가 나아지는지 점점 곧게 몸을 세우는 피터를 쳐다보며 토니는 고장난 것 같은 제 입을 간신히 움직였다. 


  "죽으려고 지원했다고."

  "그래."

  "멍청한 생각이네. 죽어서는 절대 최고가 될 수 없어."


  왜 갑자기 최고를 논하게 됐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것이 피터를 설득하는 데에 제가 가진 최선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뿐. 그러나 피터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지 그저 미약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토니는 피터가 낯선 얼굴을 보일 때마다 그것을 즐겼지만 저 얼굴은 차마 즐길 수가 없었다. 뭔가를 포기한 것과도 같은 얼굴이 여상하고 또… 왠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넌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

  "나는…"

  

  토니는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왜 벌써 포기해? 이미 네 죽음을 가정한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그렇게 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피터의 고지식한 완고함을 다시 돌리려 말을 꺼냈지만 피터가 훨씬 빨랐다. 그는 어깨에 놓여진 토니의 손을 떼어내고 뒷걸음질로 다시 문가로 다가갔다. 토니는 제 몸에 닿던 피터의 손짓이 가시자 본능적으로 다시 손을 뻗었지만 이미 피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네 차 아직 거기 주차되어 있더라."


  문은 미련 없이 닫힌 주제에 마치 토니를 배려하듯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늘은 주황색이었다. 노을이 진 것도 아닌데,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의 장대한 서막처럼 그렇게 불길하고 기묘한 빛을 했다. 평소 의존하는 종교나 민속 신앙 따위가 있을 리 없는 토니에게도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은 꽤 많은 바를 뜻했다. 토니는 전선의 뒷쪽, 센티넬들이 버거워하는 틈이 보이면 투입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가이드들의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팔짱을 끼고 인상을 썼다. 누가 보면 금방이라도 시작될 전쟁을 맞이하는 사람답지 않게 침착하다고 했겠지만, 토니는 오른발과 왼발에 번갈아서 무게를 실는 제 모습을 객관화해 머릿속으로 상상해본 뒤 스스로를 비웃었다.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그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의 안위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작전 코드 델타 델타 엡실론. 준비됐나?  


  귓속에 박힌 이어셋에서는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콜슨 요원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멍하니 기재한 토니는 이내 미성의 목소리가 준비되었다고 답하는 것을 들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작전명을 부르는 것에도 한 사람만이 대답한 이유는 이 작전의 처음과 끝이 모두 피터 파커이기 때문이겠지.


- 투입.


  옆에 서있는 가이드는 모니터를 제공받았는지 톡톡 두드리며 전선의 앞 시야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토니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화면을 쳐다보자, 1989년 최신형 스타크 인더스트리 모델을 들고 있던 그 가이드는 제가 들고 있는 기기를 만든 사람의 아들이 굳이 제 것을 훔쳐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멍청한 표정을 짓다 이내 토니와 함께 화면에 집중했다. 토니는 마스크를 쓴 피터가 전선의 앞쪽, 일렬로 서서 보호대를 들고 있는 군인들의 뒤에 숨어 있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실려갔으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서 도망을 갔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피터는 조금 긴장했을 뿐 힘은 넘쳐나 보였다. 모니터를 들고 있는 가이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센티넬 아니랄까봐 스태미너 엄청나 보인다. 

  아니, 센티넬이라서가 아니라 피터 파커여서 그런 건데. 토니는 그렇게 정정하려다 앞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기에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바짝 고정했다.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던 피터가 적군이 당황하는 새에 거미줄을 통해 재빨리 적진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이었다. 피터는 원격 조종에 강력히 의존하는 적군의 약점인 수뇌부 격의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기기 곁으로 침투해 손을 기계 안으로 깊숙히 넣었다. 언제나 기계를 보는 시선이 섬세했던 그가 기계 속의 파츠 하나를 떼어내자 주변의 로봇 기계들은 맥아리 없이 쓰러졌다. 작전이라고 하기에도 허망할 정도로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영향력이 컸다. 그제서야 인간 군인들은 정신을 차린 듯 피터에게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토니는 이제야 작전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스스로가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이룰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이어피스에 대고 속삭였다.


  "자비스."

  [Yes, sir.]

  "아이언맨 아머들을 적진에 배치해."

  [배치할 수 없습니다. 아이언 패트리어트 아머들의 배치권은 닉 퓨리에게 있습니다.]


  기어코 이름을 바꿨군, 하는 생각이 스친 토니는 고개를 저어 그것을 털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Override. 어차피 현재 스파이더맨을 보호… 아니, 적군을 공격할 계획이 없으니까 해도 되잖아."

  [현재 군에 적군을 공격할 계획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sir.]


  뭐? 토니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지금 피터가 적진에 가 있는데 공격을 할 리가 없잖아,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 첫 폭탄이 터졌다. 군인들이 쏘아대는 총을 피하려고 하늘 높이 거미줄에 매달려 올라갔던 피터의 팔과 볼에 폭발의 여파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그을음을 만들어냈다. 피터는 마스크가 뜨겁게 달라붙어오는지 재빨리 그것을 벗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토니는 스스로가 얼마나 나이브하게 살았는지, 저를 위해 지어진 이 세상이, 또 그 세상이 만들어간 자신이 스스로의 성장을 얼마나 저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왜냐하면… 진작 알았어야 했으니까.

  

  이 작전은 피터 파커의 죽음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작전이었던 것을.

  '난 전장에서 죽으려고 지원했어.'

  그 말은 단순한 각오가 아니라 작전의 요약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버거울 정도로 울려댔다. 뭔가 이런저런 날카로운 소리가 박자처럼 터져나왔지만 모조리 뭉뚱그려져 둔탁한 소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토니는 다짜고짜 뛰기 시작했다. 적진을 향해, 피터를 향해, 아무런 계획이나 현명한 작전 없이 아군을 헤치고 마구 뛰었다. 중간에 누군가가 막으려 팔을 잡은 것 같았지만 뿌리치고 숨이 차 목이 따가워질 때까지도 뛰었다. 아무리 토니 스타크여도 이 정도를 뛸 스태미너는 가지고 있었다. 

  피터가 눈에 들어왔을 때, 그가 더 가까워졌을 때, 토니는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젓는 피터에게서 그때의 눈빛을 읽었다. '이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나는 전장에서 죽으려고 지원했어.' 여전히 뛰고 있는 토니는 그 말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로 제 턱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대체 왜 죽음을 전제하고, 포기로 시작을 한 거야, 피터. 나는 이렇게 포기를 하지 않았는데, 너도 그래서 포기하면 안 되는 건데. 토니는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자비스, 아이언맨, 아머들 데려와! 모든, 책임, 내가, 질, 테니까."

  [아이언맨 아머를 가동시킬 시에 닉 퓨리로부터의 제제가…]

  "내가, 개발한 건데, 지랄하고 있네. 젠장, 그럼 마크 42 불러와!"

  […네, 알겠습니다.]


  봤지, 피터? 이렇게 하는 거야. 죽겠다고 뛰어드는 대신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대안을 낚아채는 거라고. 토니의 심장은 아까보다도 빠른 속도로 쿵, 쿵, 하고 뛰기 시작했다. 아직 개발조차 끝나지 않은 아이언맨 아머의 일종인 마크 42를 불러들이는 것은 도박과도 같았다. 여전히 거미줄로 이리저리 도망치며 간간히 공격도 하고 있는 피터의 팔에는 조준을 잘 한 적군의 총알이 스쳐지나가며 그에게서 고통 어린 신음을 자아냈다. 토니가 가까이 온 것을 본 다른 군인은 그에게도 총구를 겨누며 고개를 내리며 조준을 하기 시작했다. 토니의 몸에 와서 달라붙은 아이언맨 아머 파츠들만 아니었으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토니는 손을 들어 리펄서를 쏴 앞의 군인을 단번에 무력화시켰다. 지금까지 무인 아머만 개발해본 그는 조금 삐걱거리지만 처음 입어보는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간단한 감상과 함께 피터가 있는 쪽의 군인들을 좀 더 겨냥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허리를 잡고 날아가고 싶었지만 아직 사람이 입는 아머는 이동보다는 그 자리에서 공격만 하기에 걸맞게 디자인을 해놓은 터라. 


  토니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저를 보는 피터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우선 토니 스타크는 정말 단 하나의 선택지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아닌 이상, 진부한 자기 희생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그는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고, 뭐니뭐니해도 우선 살아있는 것이 최고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 말은 정말 틀린 것이었다고. 토니 스타크는 압박감 아래에서는 확실히 바뀔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그는 피터에게서 죽을 각오라고 생각했던 그 자살 예고편과도 같은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며칠 밤을 새서 마크 42를 미친듯이 개발해냈는지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최고의 옆에는 최고가 붙는 것이 당연하다. 피터의 방식은 백마 탄 왕자님처럼 숭고했지만 딱 그만큼 구식이기도 했다. 그러니 토니는 피터에게 최고가 되는 법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부터 알려줘야 했다. 당신이 죽는 것은 용납도, 허락도 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컨트롤 프릭과도 같이 보인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토니의 한도에서 최고는 그런 것이었다는 것 또한.


  토니의 쪽을 빤히 바라보던 피터가 비척비척 일어나는 것을 주변 시야로 확인한 토니가 아이언맨 아머를 푸는 버튼을 눌렀다. 우선 가이드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최고답게.






  --THE GREATEST.


  

  

 



  

  

  

  


 


  

  


 

  









- 사월님과의 연성 교환으로, 키워드 노래는 보시다시피 Sia의 The Greatest였습니다! 

- MCU 관련 글은 제가 아무리 극적으로 써도 원작보다 훨씬 수수하다는 점이 마음 편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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