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토니피터] 하이브리드 강아지 키우기 12

Raising Hybrid Puppies 번역본

피터는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패닉해본 적이 없었다.


"어, 안녕하세요, 음, 스티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무슨 일... 버키한테는, 그, 할렘에서 봉사 중이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스티브는 고개를 젓지도 않는다. 웃지도 않고. 인상을 쓴 스티브 자체가 매우 무섭지만, 그가 전기충격기와 경관봉이 걸려있는 벨트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서 더욱 무서웠다. 


"마침 비번이라 관활 구역을 좀 더 넓혀보기로 해서."


피터는 할 말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잇는 스티브의 목소리의 낮은 톤이 불길한 징조처럼 들렸다.


"The Hybrid Puppy에 들렸는데, 네 숙모가 네가 MJ네로 갔다고 하시더군. 그런데 분명 MJ는 새해를 고독 속에 맞이하고 싶어서 혼자 있다는 트윗을 올렸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지."

"운전하면서 트위터 확인하셨다고요? 그거 위험한데요, 자칫하다간..."


피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도 스티브는 반응이 없다. 피터가 몸을 움츠렸다. 반쯤만 사실대로 말할까...?


"전 그냥... 음, 제가 몇 주 전에 스타크 씨 작업실에 있는 커피 머신을 고쳐드리고 커피 블렌드도 몇 개 드렸는데, 벌써 다 동났다고 하시고 새해를 맞이할 때 카페인이 없을 수 없다고 하셔서, 제가 그냥—그러니까 마침 제가 깨있기도 했고, 그래서..."


피터가 등 뒤에 위풍당당하게 뻗어있는 스타크 타워를 향해, 그 다음엔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차를 향해 손짓했다.


"그 다음엔 스타크 씨가 저를 집에 데려다 주시기로—아니, 어, 제 말은, 집으로 가는 차량을 제공해주시기로 해서요."


몇 초동안 정적이 흘렀다.


"지금 스타크가 고작 커피 배달 받으려고 본인의 파티를 버리고 갔다는 거야?"


아니요, 선물이랑 키스 주고받으려고 일찍 떠났죠, 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피터는 입을 다물고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하며 고개를 으쓱였다.


"피터 커피 드셔보셨죠, 로저스 경관님? 당연히 제 파티라도 일단은 버려둬야죠."


피터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환청을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 토니가 그들과 함께 거리에 서 있었다. 피터가 펜트하우스의 선물 더미에서 본 슬랙스와 파란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채로. 피터는 이 와중에도 그 차림이 얼마나 토니의 몸에 완벽하게 맞는지를 봐둘 수밖에 없었다.


스티브는 설득되기는 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 수상쩍어 하는 눈치였다. 진심으로, 피터는 토니의 도움 받을 필요가 없는데, 혼자서도 잘—


"그리고 커피 머신에 재고를 다시 넣는 데에 3시간이 걸렸다는 말씀이십니까?"


.... 다시 생각해보니까...


토니가 주머니에 넣은 양손 중 한쪽 손을 빼고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타워 내부는 보안이 워낙 세서요. 피터가 들어오는 데에만 해도 한참 걸렸고, 저는 지미랑 하던 회의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아, 지미 아시죠? 지미 오 닐 주니어, 뉴욕 시 경찰국장 말이에요, 아시려나?"


스티브는 토니가 그들의 바로 앞에서 멈춰설 때도 뒤로 물러서기는 커녕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피터는 어떻게든 토니에게만 보일 수 있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려 노력했다. 안 그래도 스티브를 제일 분노하게 하는 게 부당함이나 불평등인데, 토니가 인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건... 확실히 최선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미가 오늘 내내 저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서 미루고 싶지는 않았죠, 지금 아니면 언제 시간을 내겠어. 그리고 어차피 피터는 저 없이도 작업실에서 잘 할 수 있으니까, 맞지, kid?"


피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지만 토니가 선수를 쳤다. 피터가 거짓말에는 젬병이라는 걸 감안하면 좋은 선택이기는 했다.


"그리고 파티에서 오르되브르 (전채요리) 몇 개 먹이기 전까지는 애를 보낼 수가 없어서요."


토니가 '자, 어떠냐'라고 하는 듯 한 제스쳐로 손을 펼쳤다. 피터는 스티브의 반응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돌아온 반응은 무반응이었다.


스티브는 그저 토니를 싸늘한 미소로 응시할 뿐이었다. 피터는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놀라서 빨리 뛰기 시작하는데, 토니는 피터가 옆에서 손을 꼼지락대든 말든 스티브의 얼굴을 전혀 거리낌 없이 똑바로 마주했다. 결국 정적을 깨는 건 스티브였다.


"원래부터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셨어요?"

"잘 모르겠네요, 원래부터 이렇게 오지랖 넓은 개자식이셨어요?"


피터가 속으로만 긍정할 동안 스티브가 즉답했다.


"네. 그리고 아무도 못 속이십니다, 스타크 씨."

"스티브—"


피터가 끼어들어 보지만 이번에도 토니가 말을 잘랐다.


"아냐, 피터. 듣고 싶은데."


토니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관님?"


스티브는 여전히 토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 때, 피터는 얼굴에서 모든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을 느꼈다.


"제 생각에는, 스타크 씨, 당신은 지금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고 숭배하다시피 하는 한 소년의 마음을 착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나르시즘 때문에 자기 만족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고, 자신의 행동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 지에 대한 자각이 전무한 사람이니까."

"어려운 단어 깨나 쓰시네요, 친구. 아주 걸어다니는 사전이신데."


토니는 짧게 웃으며 비아냥댔지만 그 말에 열기는 거의 없었다.


"더 어려운 단어도 있는데요."


스티브가 주먹을 꽉 쥐고 토니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그는 토니를 노려보고 있었고 토니는 그 시선을 받으며 이를 꽉 악물고 있었다.


"당신 페도파일입니다."


토니가 그 말에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피터는 그 동작마저도 주변 시야로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아무래도 이번에는 정말 끼어들어야겠어서.


"페도파일 아니에요! 그리고 저 착취하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원하는 거—"

"넌 지금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헛소리 마세요!"


피터가 태어나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맹렬함으로 대꾸했다.


"어른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저 제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게 평범한 관계는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라고요. 별 일도 아닌 걸 크게 만드는 건 스티브니까 그냥 손 떼세요!"


서 있는 두 명의 어른들이 다 놀란 듯 피터를 응시해 그들 사이는 다시 고요해졌다. 토니는 놀란 얼굴로 피터를 거의 경이롭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 표정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피터는 아무래도 좀 덜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다시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스티브는 그렇게까지 끌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 들리게 숨을 크게 내쉰 그가 다시 토니 쪽을 돌아봤다.


"당신을 지금 당장 여기서 체포해야 하는데."


피터의 눈은 휘둥그레지지만 토니는 이미 막힘 없이 말하고 있었다.


"네, 그럼 아주 좋겠네요. 뭐 증거가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그걸 누가 신경 쓰겠어요, 그렇죠?"


토니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세상에, 존 올리버는 좋아서 설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괜찮은 채널 몇 개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게 아예 전무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테지만, 인터넷 상에 제 사진은 충분히 많으니까 욕심 많은 밑바닥 인생 몇 명이 포토샵으로 사진 몇 장 조작해서 불을 지피는 건 시간 문제겠고... 회사 주식은 확 떨어지겠지만 뭐, 직원 정리만 몇 번 하면 다 해결되지 않겠어요?"


스티브의 시선에서 열기가 조금 가셨다. 토니가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네,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 있으면 불쌍한 영혼 몇 명은 자기소개서에 스타크 인더스트리 근무 경력을 달고 새 직장을 찾아나서야겠네요. 아니, 그래야겠지만, 면접 보기 전 샤워할 물도 없으니 그러기도 힘들겠고."

"물은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스티브가 따지자 토니가 손바닥을 펼쳤다.


"이제 수도 시설 전체가 제 기술로 돌아가고 있어서요. 1년 정도는 괜찮을 지 몰라도 그 뒤로는 관리가 필요하죠. 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내가 감옥에 갈 때 내 일을 대신 해줄 견습생이라도 하나 둘걸. 그런데 어쩌겠어요, 어떤 독선적이고 멍청한 새끼 하나가 내가 만나본 열 여섯짜리 중에 제일 성숙한 애를 위해 영웅 행세 좀 하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게 잘못이었지."


그 칭찬에 피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토니는 워낙 차가워서 스티브의 것과 비슷하게 들릴 정도의 톤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저한테 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설교하는 대신, 본인의 이 충동적인 짓거리에 대해 고민 좀 해보시고 저를 감옥에 집어넣는 그, 뭐라 하셨더라? 아, 그 자기 만족이 과연 저같은 사람을 체포했을 때 당신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미칠 영향보다 더 중요한지에 대해 뇌 좀 굴려보시죠."


스티브가 몇 초동안 토니를 빤히 쳐다볼 동안 피터는 숨을 참았다. 스티브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지, 그리고 토니가 그가 한 주장을 아예 반격하는 데에 썼다는 것에 얼마나 열이 받은 상태인지가 분명히 보였다. 결국 스티브를 움직이게 하는 게 무엇인지는 불분명해도—피터가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했다는 점인지, 토니가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대해 한 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억겁과도 같은 시간 후에, 그가 결국 거칠게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얼굴을 마른 세수하듯 문질렀다. 


토니가 비웃듯 피식 웃는 동안 피터는 그제서야 숨을 쉴 엄두를 냈다.


"하지만 지켜볼 겁니다, 스타크. 이 법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스티브가 토니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토니가 매끄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법을 착실하게 따르는 중이죠."


피터는 입술을 깨무는데, 왜냐하면, 음, 굳이 따지고 들면 완전히 따르는 중은 아니어서...


"끝까지 따르셔야 할 겁니다."

"예, 분부 받들겠습니다."


비꼬듯 대답한 토니가 차 두 대와 타워를 향해 차례대로 손짓했다.


"이제 우리 다 갈 길 가도 될까요?"

"피터는 제가 데려다 주죠."

"아, 스티브, 괜찮아요, 저 그냥—"


피터가 말을 꺼내봤지만, 그러면서도 스티브가 '부탁이 아닌 명령 목소리'를 낼 때는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버키는 이 목소리를 '캡틴 목소리'라고 부르고는 했는데, 그 단어를 들은 스티브는 어찌된 일인지 항상 얼굴을 붉혀서 피터는 그 단어로는 최대한 부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래서 결국 피터는 토니와 작별 인사 대신 미소만 주고받고 스티브의 순찰차를 타고 퀸즈로 향했다. 처음 몇 분동안 차 내부에는 침묵이 감돌아, 피터는 그제서야 지금 시간이 얼마나 늦었고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를 실감했다. 특히 이 대재앙이 될 뻔한 사건 이후로는. 


퀸즈보로 다리를 건널 때쯤 스티브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어도 돼, 피터. 지금 동의한다고 해서 항상 해야된다는 건 아니야. 넌 언제든—"

"알아요."


피터가 스티브의 말을 끊었다.


"예스는 예스, 노는 노, 뭐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야, 피터, 이거 되게 중요한—"

"알아요!"


피터가 다시 한 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화가 나는 기분은 딱 질색이지만 말을 신중하게 고르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토니도 알고 있어요! 너무 안 좋게만 보지 마세요. 스티브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그런 성 범죄자같은 사람 아니라고요! 되게 좋은 사람이고 착하고 관대하고... 그러니까, 우리, 우리 그런 거—제 말은, 음, 우리 되게 즐겁고, 저, 저 괜찮다고요."


스티브가 피터를 흘끗 본 뒤에 다시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해? 목소리만 들으면 그래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귀 청소 좀 하셔야겠네요, 저 엄청 즐거우니까."


피터는 팔을 끼고 나서야 방금 한 말이 얼마나 방어적이고 날카로웠는지를 깨달았다.


잘하는 짓이다, 파커. 


스티브는 피터가 사는 아파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차를 멈추고 나서야 목을 가다듬고 인상을 살짝 찡그린 얼굴로 돌아봤다. 어딘지 초췌해보이기도 했고, 피터를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네? 아니에요!"


피터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왜냐하면 절대 아니니까, 아니라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멍청하고 구질구질하고 우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고 피터는 그보다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해한다니까, 피터. 스타크는 매력적이고, 천재적이고, 권력과 돈도 많으니 아무리 잠깐이라도 그가 네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지."


그 말을 반박하고 싶지만 스티브의 톤 때문에 어쩐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과거의 아픔이 남아있는 것 같은, 거의 경험담을 토로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심해야 돼. 그런 사람들은, 피터...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거든. 그럴 수도 없고."


하지만 토니는 그럴 수 있는데. 


피터의 머릿속에서 한 목소리가 그렇게 속삭이지만 그 생각을 피터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스티브는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닌 표면만을 보니까. 피터와 달리.


물론 그렇다고 피터가 사랑에 빠졌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가 일반인보다는 토니 스타크를 더 잘 안다는 것일 뿐. 그 사실 자체도 당연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지만, 피터가 이 관계에서 바라는 건 단지 육체적인 쾌감일 뿐이다. 그, 음, 경탄스러운 육체적인 쾌감이—그래, MJ가 피터가 형용사를 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의어 사전을 주기는 했다—전부니까, 피터가 그 뒤로 2주동안 토니를 못 볼 때도 그저 그게 그리웠을 뿐이다.


끔찍한 2주동안.


"맹세컨데, kid, 널 피하고 있는 게 아니야."


토니의 보이스메일조차도 접속하기가 유난히 힘들어져서 피터의 음성이 인식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작은 결함들이 좀 생겨서—물론 내가 이렇게 말한 건 비밀이지만—게다가 PR 문제 때문에 펩이 날 지미 키멜이랑 엘렌 쇼에 날 출연시키려고 해서 LA도 가야하고, 그 다음엔 시장도 날 좀 보자 하고 그 이름이 뭐더라, 거기 사는 그 테슬라 만든... 으악. 한, 15일 동안은 작업실은 가보지도 못 한 것 같아. 그리고 네 커피도, 그거 아직 펜트하우스에 있을 걸..."


그 뒤로 토니는 그 블렌드를 어떻게 열고 또 어떻게 음미할 것인지에 대해 대단히 생생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줌으로서 피터로 하여금 이 음성을 학교에서 듣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화장실에서 들어서 갑자기 피터의 바지 속이 왜 갑자기 팽팽해졌는지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젠장, 이 꼴로 공부하러 갈 수도 없는데...


다 정리하고 나니 심지어 늦기까지 해서 피터는 화장실 칸의 문을 박차고 나오지만—공교롭게도 피터가 있는 곳으로부터 두번째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플래시를 마주한다. 


보통 주변에 관심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플래시는 피터를 만나도 무시하고 지나가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왠지는 몰라도 어딘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피터를 곁눈질했다. 피터는 눈치를 못 챈 척 손을 씻는 데에만 집중했다. 플래시가 입을 열며 그에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이봐, 파커, 어제 나한테 좀 흥미로운 일이 생겼는데. 내가 어제 네 카페에 하는 수 없이 발을 들였는데—베티가 '일 월의 사랑'인가 뭐시긴가 하는 그거 마시고 싶대서—"

"'일 월의 연인'이야, 일부러 'ㅇ' 발음이 계속 들어가도록—"

"그래, 그래, 아주 대단한 문학가네, 차세대 오스카 와일드 씨."


플래시가 피터의 세면대 바로 옆에 서며 씩 웃었다.


"나는 워낙 좋은 남자친구니까, 베티 대신 주문도 해주려고 카운터로 갔다가 우연히 네 숙모도 만났지."


피터는 이 대화가 어디로 갈 지 종 잡을 수 없어서 '음' 하는 소리를 한 번 내고 플래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근데 내가 주문하면서 이름을 알려드리니까, 나한테 윙크하시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커피랑 도넛은 공짜라더라? 대체 왜 그럴까?"


아... 젠장. 메이는 당연히 피터가 말씀 드린 '유진'이 플래시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 세상에, 대체 왜 일이 이렇게...


"솔직히 말하자면, 파커, 기분이 꽤 좋기는 해."


플래시가 은근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날 짝사랑하는 게이 남자애가 네가 처음은 아니거든.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지—난 여자가 좋아. 가슴 말야, 인마."


플래시가 피터가 토니의... 팔... 을 묘사할 때 가질 만한, 뭔가를 숭배하는 말투로 말했다. 드디어 플래시가 입을 닫아 피터는 이제서야 반박할 수 있었다.


"아니, 괜찮아, 나 진짜 네 얘기한 거 아니거든."


하지만 플래시처럼 자존감이 치사량 수준인 애의 귀에 그 말은 그저 디나이얼로 들릴 뿐인 듯 했다. 플래시가 피터의 개인 공간에 갑자기 들어와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이해한다니까, 파커. 나도 너같은 너드라면, 우리 학교에서 제일 새끈한 차를 갖고 있는 데다가 카리스마 있고 잘생기기까지 한 나한테 빠질 수밖에 없었겠지. 심지어 내 인스타 팔로워가 170만 명이니까 말 다했잖아? 그래도 이건 말야,"


플래시가 자신과 피터를 번갈아 가리켰다.


"절대 잘 될 리 없는 관계야, 유감이지만. 관심은 고맙고, 네 숙모의 눈빛이 좀 음흉해서 걱정되지만... 유감은 유감이야."

"아. 그래..."


피터가 억지로 시무룩해진 척을 했지만 플래시는 그래도 그의 어깨를 놓지 않았다.


"미드타운에서 그런 일로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어, 파커. 아무리 나라도 네가 게이라는 사실을 놀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커밍아웃하는 걸 막고 있는 게 그거라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진짜, 플래시—"

"디나이얼은 정신건강에 안 좋아, 파커."


플래시가 피터의 말을 가로막으며 여전히 설교하는 톤으로 말했다.


"내 사촌도 동성애잔데 커밍아웃 하고 나서 훨씬 자유로워진 기분이라고 했어."

"나 충분히 자유로워."


피터가 장담함에도 불구하고 플래시의 눈빛은 여전히 가련한 어린 양을 보는 듯 아련했다.

그 순간 문이 쾅 하는 소리와 열리며 매우 짜증이 난 것 같은 MJ가 등장했다. 그들의 희한한 자세를 본 그녀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거기 있었네, 피터. 지금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미안해, 난 그냥..."


그러나 피터가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플래시가 먼저 선수 쳤다.


"지금이 기회야, 파커."

 

피터가 반쯤은 짜증으로, 반쯤은 피로로 가득 찬 한숨을 내쉬고 어리둥절한 MJ에게 간곡한 눈빛을 보냈다.


"제발 나 이미 커밍아웃했다고 얘한테 말 좀 해줄래? 나한테 중요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MJ는 눈을 딱 한 번만 깜빡이고는 코웃음을 쳤다.


"피터는 지가 '성소수자 프라이드의 달'에 팔았던 무지개 컵케이크보다 더 게이인 애야."


피터는 드디어 플래시의 팔을 털어내면서 '봤지?'라고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 너 안 좋아해."


그 말에 MJ가 큰 소리로 빵 터졌다.


"미친, 플래시, 자의식 과잉인 줄은 알았지만, 뭐라고? 피터가 너를? 피터는 너보다 훨씬 괜찮은 놈 만날 수 있는 앤데. 자 이제,"


MJ가 피터를 쳐다보며 휘파람을 한 번 휘익 분 뒤에 등을 돌렸다.


"나 개 아니거든!"


피터는 이 점을 꼭 집어내야 할 것 같아서 MJ에게 소리친 뒤에 MJ의 말에 발끈한 플래시를 내버려두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동안 MJ가 핸드폰을 꺼내며 진지한 얼굴로 피터의 항의를 기각했다.


"아니, 넌 강아지지. 그래도 양자 물리학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강아지니까 경시대회 팀에 남아있을 수 있는 거야."


피터는 그 말에 작게 투덜대면서도 MJ를 따라가는데... 문제는 코너를 돌자마자 그녀의 등에 부딪힌다는 거다. 


"미안... 왜 갑자기—?"


피터가 중얼거린 말에도 MJ는 대답은 커녕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아서 피터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어깨 너머로 화면을 확인했다. 제목은 읽을 수 있겠는데 대체 왜 MJ가 말 그대로 맹수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아니면 대체 왜 넷플릭스 드라마 캐릭터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는지.


피터는 다시 블로그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을 훑지만—'CIA,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제조한 '정신 개조' 약물 사용했다... "유출된 문건 속 확증 있어"'—MJ의 반응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본 MJ가 입을 떡 벌렸다.


"뭐야, 반응이 왜 이래? 지금 화가 안 나?"

"나, 나지! 근데 난 잘..."

"우리 도시 전체의 물을 통제하고 있는 남자라고. 이 남자가 아직 정부랑 하고 있는 계약이 많고, 그 중 군사적인 것도 많은—"

"그거 그냥 국가 안보를 위한—"

"게다가,"


MJ가 점점 더 어두워지는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통신 시장을 전 세계적으로 독점하고 있어서 ICC가 벌써 규제하려고 드는 사람인데, 존나 CIA를 위해 향정신성 약물을 개발해주기까지 했다고? 그거 약이야, 물로 퍼지는 거라고, 파커!"


피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화, 확실히 그런 식으로 놓고 보면..."


심지어 네드도 MJ가 5분 후에 화면을 들이대자 얼굴이 창백해진다. 기사를 빠르게 훑어본 그가 눈을 크게 뜨고 피터를 돌아봤다.


"스타크 씨가 그럴 리 없지, 피터, 그치? 아니, 그럴 이유가 없으시잖아?"

"그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이제 정부 손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막을 수 있으시잖아."


MJ의 반박도 바로 받아치던 네드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입을 다시 열었다.


"그 분 AI가, 아마, 아마 벌써 파이어 월* 다 뚫고 대기 중이라서 정부가, 막 약물 퍼뜨리려고 하면 자기 주인님한테 다 말해버릴 걸? 그럼 스타크 씨가 다 막아버릴 거고!"


네드가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피터를 보았다.


"그렇지?"


피터는 딱히 대답해줄 말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봐, MJ, 걱정할 거 없다니까."

"와, 정말 안심이 되네."


MJ가 그들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도로 빼앗았다.


"토니 스타크의 있지도 않은 도덕적 잣대를 이렇게 잘 아시는 전문가님이 계시니까 말야. 아주 신빙성 있었어."


피터는 토니를 변호하려 하지만—토니는 윤리적인 남자니까, 그걸 언젠가는 전세계가 알게 될 거니까—입을 떼기 직전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MJ가 듣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게다가 피터는 토니의 남자친구도 아니니까. 자신이 토니의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친구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냥 육체적인 관계일 뿐이라니까. 


MJ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블로그에서 정보를 받는 편이어서, 대형 언론사들이 유출된 문건들의 사실 확인을 마치고 보도하는 데까지는 반나절이 걸린다. 그러나 막상 보도하기 시작하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토니가 LA에서 며칠을 더 있는 바람에 피터는 그 난장판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토니가 맨해튼으로 바로 돌아오는 대신 워싱턴 DC로 가서 상황 수습에 나서는 바람에 피터는 그동안 '너무 하고 싶어서 죽을 수도 있나요?'같은 걸 구글링하기 시작했다.


한편 메이는 피터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가 유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하필 토요일 오전, 피터와 메이가 둘 다 The Hybrid Puppy에서 일하고 있을 때 취조를 시작한다.


"아니, 아니에요, 그냥, 음,"


피터는 말을 더듬으며 머핀을 더 가져오려 1층으로 내려오는 게 자신이 아니라 진하여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공부가요, 요즘, 어, 많이 힘들고..."

"정말? 나 커피 부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었어."

"유진은 아무 잘못도 안 했어요."


피터가 확언하며 플래시가 제발, 제발 메이가 보는 앞에서 베티와 키스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오, 걔는 확실히 아무것도 안 했겠지."


카운터 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피터가 등을 휙 돌렸다. 버키가 피터를 향해 얄궂게 웃고 있었다. 젠장, 뭔가 아는 눈치인 걸로 봐서는... 스티브랑 대화를 좀 하고 온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버키. 항상 마시는 걸로 드릴까요?"


메이의 말에 버키가 웃으며 등 뒤를 가리켰다.


"네, 그리고 아몬드 우유로 만든 차이 티도 한 잔이요."


버키가 가리킨 곳에는 그로부터 두 발짝 정도 떨어져 있는 브루스 배너가 있었다. 드디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된 피터가 기쁘게 브루스에게 손을 흔들고는 버키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웨딩 플랜 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짜는 거 맞아. 브루스의 수많은 재능 중 하나거든. 페퍼 포츠 웨딩도 브루스가 짰어."

"아니거든."


브루스가 끼어들었다.


"장식용 불꽃 관련 기술만 좀 도와준 거야."

"그럼 내 결혼식에도 불꽃놀이 해줘."


브루스 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피터는 왠지 그게 오늘 그의 마지막 한숨은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브루스가 윗층을 향해 턱짓했다.


"툼스가 벌써 윗층에 빵 샘플 몇 개 준비해뒀어."

"먼저 올라가, 브루스, 난 피터가 음료 만드는 것 좀 도와주게."


버키가 피터가 온 힘을 다해 사양하는 것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래도 메이 숙모가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서야 그가 피터에게 다가오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였다.


"유진이라더니?"


피터가 버키가 주문한 '일 월의 연인'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네가 토니 스타크 펠라해줄 수 있게 조언해줬다 이 말이야?"


피터가 혀를 깨물었다.


"좋아하디?"


피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들고 있던 우유 잔을 거의 떨어뜨릴 뻔하며.

버키의 은근한 웃음은 거의 음흉할 정도였다.


"아, 엄청 좋아했나 본데? 맞지? 봐, 말했잖아—내가 바로 오랄 섹스의 마스터라니까."

"그럼 버키는, 그, 저한테, 막, 뭐라고 하려는 건..."

"됐어, 스티브가 해줘야 할 말은 다 했겠지 뭐.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네가 내 말 들을 것도 아니잖아. 그럼 하는 김에 즐기는 게 낫지."


버키가 어깨를 으쓱이며 브루스의 차이 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연습이라고 생각해, 많이 연습해놓으면 네 미래 애인들이 엄청 좋아할 걸."


그치만 미래 애인들은 필요 없는데. 

피터는 그렇게 생각해놓고 순간 하던 모든 동작을 멈췄다.


아, 망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기도 전에 커피가 다 준비되어서, 피터는 그걸 핑계 삼아 방금 한 생각과 그 생각이 암시하는 바를 몽땅 뇌 속의 가장 구석진 공간으로 밀어넣기로 한다.


윗층에 도착해서 창가쪽 테이블로 가자 엄청나게 다양한 최고의 빵 컬렉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 생각을 지워주는 데에 한 몫 했다.


"읏, 피터, 이거 한 입만 먹어봐."


그렇게 말하는 버키의 손에 들린 건—


"그거 경찰관 뱃지 모양 타르트예요?"

"물론이지."


툼스가 한쪽 구석에서 자신의 컬렉션이 널린 세 판을 백성들을 둘러보는 왕같은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여전히 조금은 멍한 피터가 툼스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거 내가 시킨 거야?"

"아, 네, '헬스 키친의 화염'이요."


피터가 꽤 자랑스러워하는 블렌드다. FDA**에서 규정한 음료 내의 카페인 최고치 직전까지 치닫는다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음료 내의 카페인 수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버키가 두 번째 판 위의 빵 하나를 집으려다 멈칫했다.


"에이, 우리가 그 정도로 힘들게 굴진 않았잖아요."

"그래도 웨딩은 웨딩이지."


툼스가 낮은 목소리로 불평했다.


"리즈한테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웨딩 일은 절대 안 받는 건데..."

"아, 그래도 우리 친구 할인 다 받는거죠?"

"내 친구여야 친구 할인을 해주지, 반즈."

"아 왜 그래요, 저 사랑하시면서!"


버키가 윗입술에 설탕 장식을 묻힌 채로 웃자 브루스가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어차피 이제는 일 그렇게 많이 안 해도 되잖아요, 스타크한테 스스로를 속물처럼 팔아넘기셔서!"

"팔아넘긴 적 없어."


툼스가 곧바로 온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쏘아붙였다.


"나는 독자적인 계약자로서—"

"에이, 그래도 강아지처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버키가 의자에 더 깊숙히 기대며 덧붙였다.


"스타크가 이 특별한 웨딩 컬렉션을 놓칠 거라는 게 안타까워질 정도라...고요..."


말끝을 흐린 버키가 서서히 고개를 돌려서 배너 박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이목이 집중된 박사는 방금 자른 무지개 치즈케이크로 포크를 꽂아넣다가 멈칫했다.


피터가 버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는 1초는 더 걸린다. 브루스는 훨씬 빨라 그때쯤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되잖아."

"안 돼."

"그치만 브루스으으으! 테디베어같은 내 브루시 베어!"

"이미 데려가는 사람 있어."

"그럼 한 명 더 데려와도 돼! 브루스, 제발, 우리 혼수 리스트 완전 길단 말야, 우린 갑부 친구들도 없고—근데 브루스는 있잖아!"


피터는 배너 박사가 이렇게까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버키의 눈도 못 마주치며 의자에서 자세만 바꾸려 들썩이는 이런 모습을.


"스티브랑 내가 드디어 스무디 만들기 딱 좋은 주스기가 생기면 얼마나 우리 인생이 편해지겠어, 아침에 시간 좀 절약할 수 있고—그럼 우리가 나쁜놈 잡기 전에 잠도 더 잘 수 있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남아있으니까 도시 전체한테 이득이잖아!"


툼스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더 싼 모델들도 많거든, 반즈, 성능은 다 똑같다고."

"안 똑같거든요, 저 조사 엄청 많이 해봤는데—"

"아, 조사? 한 3분은 하셨나? 아니면 기적적으로 5분이나?"

"저 조사의 달인이거든요, 이 아저씨야."


버키가 반쯤 남은 쿠키를 칼날처럼 휘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나이프 세트는 꼭 사야한다는 건 인정 안 하고 못 배기실 걸요."

"그건 그렇다 치지만, 그 멍청한 로봇 청소기는 인정 못 하지. 네 게으른 엉덩이를 소파에서 한 번만 떼서 직접 청소기 돌리기만 해도—"


하지만 버키는 더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팔꿈치로 브루스의 팔을 쿡쿡 찔렀다.


"왜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만든 로봇 청소기 모델은 안 나와?"


브루스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피터가 한 번 기침하고 대신 대답에 나섰다.


"어, 거기 자회사가 할 걸요? 제 말은, 거기 자회사 중 하나가 로봇 청소기 제조업체예요."


툼스가 낮게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앉아있던 의자에 더욱 기댔다.


"당연히 그렇겠지, 망할 새끼들."

"오, 그럼 스타크가 웨딩 선물로 하나만 주면 딱 되겠네!"


버키가 마치 모든 게 완벽하다는 듯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가 다시 브루스 쪽을 돌아볼 동안 피터는 방금까지 머릿속을 장악하던 멋진 백일몽을 떨쳐내려 노력하는데— 토니가 실제로 스티브와 버키의 웨딩에 나타나서, 쓰리 피스 수트를 입은 채 내내 피터와 이야기하는 것. 

물론 수상쩍은 건 아니고, 그냥 공학이랑 커피에 대해 대화만 하는 거겠지만, 마침 웨딩이 진행되는 건물과 피터가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는 건물이 같은 곳이라서 피터가 건물 구조도 다 알 뿐만 아니라 비어있는 교실의 열쇠도 가지고 있다면? 어차피 손님도 그렇게 많은데 토니와 피터가 30분 동안만 안 보여도 아무도 신경 쓰지는 않지 않을까.


피터가 생각에 잠겨있던 와중 툼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반즈, 나한테는 속물이라더니 정작 너는 스타크 좀 초대해달라고 빌다시피—"

"비는 거 아니고, 그냥 친구한테 부탁 하나만—"

"불쌍한 박사님을 착취하는 거잖아,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자식."

"그런 거 아니—"

"저기."


왈가왈부하던 두 남자가 동시에 배너 박사를 쳐다봤다. 버키는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한데, 피터 본인도 숨을 참고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았다.


"미안하지만, 내 대답은 여전히 '안 돼'야."


버키가 항의하려 입을 열지만 브루스의 얼굴은 단호했다.


피터의 심장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그러나 피터는 곧바로 다시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토니가 왜 로저스-반즈 웨딩에 오겠어, 아주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지. 게다가 웨딩을 같이 간다는 건 굉장히 연인같은 행동이고, 토니와 피터는 연인이 아니니까.


피터가 그들이 연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절대로 아닌데.













*파이어 월: 컴퓨터 보안 시스템.

**FDA (Food and Drugs Administration): 미국의 식품의약국.





- 초반부 토니ㅋㅋㅋㅋㅋ 재앙의 주둥아리가 또... 진짜 토니 입 터는 거 번역하는 거 최고 재밌어서 그 부분 11편 올라간 날에 바로 신나게 번역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꽤 빨리 올라왔죠 ᕕ( ᐛ )ᕗ







Lil'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4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